화가와 풍토 · 제1장 · 3 / 24
타마요, 흙에서 올라온 붉음
제1부 · 색
하나
붉다.
그런데 원색이 아니다.
빨강이라고 부르기에는 흐리고, 갈색이라고 부르기에는 붉다.
그 사이에 있다.
무엇을 섞었는지 알 수 없다.
회색이 섞인 것 같기도 하고 흙이 섞인 것 같기도 하다.
이런 색에는 이름이 없다.
화면 가운데에 사람이 하나 있다.
서 있는지 앉아 있는지 분명하지 않다.
몸의 윤곽이 단순하다.
어깨와 머리와 팔.
세부가 없다.
눈이 있을 자리에 점이 하나씩 있다.
배경은 색만 있다.
방인지 밖인지 알 수 없다.
깊이가 없다.
멀고 가까움이 색으로 표현되지 않는다.
앞에 있는 것과 뒤에 있는 것이 같은 평면에 놓여 있다.
그런데 답답하지 않다.
색이 두껍기 때문이다.
얇게 칠한 색은 종이처럼 느껴지지만, 두껍게 올린 색은 벽처럼 느껴진다.
벽에는 깊이가 없어도 무게가 있다.
가까이 가면 표면이 거칠다.
매끄럽게 갈지 않았다.
붓 자리와 긁힌 자리가 남아 있다.
멀리서 보면 색 하나로 보이던 자리가 여러 색으로 갈린다.
붉음 아래에 다른 색이 있다.
그 색이 사이사이로 올라온다.
색을 섞어 만든 것이 아니라 색을 겹쳐 만든 것이다.
둘
루피노 타마요는 1899년에 멕시코 남부에서 태어났다.
오악사카였다.
원주민 계통의 집안이었다.
어려서 부모를 잃었고 친척 손에 자랐다.
멕시코시티로 옮겨 갔다.
집에서 과일을 팔았다.
그는 시장에서 일했다.
과일이 쌓인 곳에서 소년기를 보낸 것이다.
훗날 그의 화면에 과일이 자주 나온다.
수박과 참외 같은 것들.
그 색을 그는 손으로 먼저 알았다.
그림으로 배운 색이 아니다.
여기서 한 가지를 보아야 한다.
시장의 색은 정돈되어 있지 않다.
익은 것과 덜 익은 것이 섞여 있다.
상한 자리도 있다.
깨끗한 원색은 시장에 없다.
그가 익힌 색은 그런 색이었다.
그가 젊었을 때 멕시코 미술에는 큰 흐름이 있었다.
벽화였다.
리베라와 오로스코와 시케이로스.
세 사람이 큰 벽에 역사와 민중을 그렸다.
혁명 뒤의 나라에서 그것은 필요한 일이었다.
글을 못 읽는 사람도 벽화는 볼 수 있었다.
진정한 성취였다.
그런데 타마요는 그 길로 가지 않았다.
그는 벽에도 그렸지만 벽화운동의 방식과는 달랐다.
이야기를 앞세우지 않았다.
색과 형태를 앞세웠다.
이 선택으로 그는 오래 외로웠다.
멕시코 안에서 그는 주류가 아니었다.
비판도 받았다.
여기서 조심할 것이 있다.
벽화 3인이 낮고 타마요가 높은 것이 아니다.
반대도 아니다.
두 길이 있었다.
한쪽은 그림으로 말하려 했고 다른 쪽은 그림으로 보게 하려 했다.
말하는 그림은 번역된다.
보게 하는 그림은 번역되지 않는다.
번역되지 않는 쪽을 택하면 멀리 가기 어렵다.
그러나 남는 것이 다르다.
그는 뉴욕으로 갔고 나중에 파리에서 오래 살았다.
멕시코를 떠나 있는 동안에도 색은 바뀌지 않았다.
파리의 빛으로 그리지 않았다.
오악사카의 빛으로 계속 그렸다.
몸은 떠났고 눈은 떠나지 않았다.
셋
여기에 이 장의 논지가 있다.
타마요의 색은 멕시코의 색이다.
그런데 우리가 흔히 아는 멕시코의 색이 아니다.
멕시코라고 하면 강한 원색을 떠올린다.
붉은 벽과 노란 벽, 선명한 직물.
관광 사진의 색이다.
타마요의 색은 그렇지 않다.
탁하다.
왜 그런가.
오악사카의 땅이 그렇기 때문이다.
그곳은 마르고 붉다.
흙에 철이 많으면 붉어진다.
그 흙으로 구운 도자기가 있다.
검은 것도 있고 붉은 것도 있다.
가마에서 나온 색은 원색이 될 수 없다.
불이 색을 바꾸기 때문이다.
직물의 색도 그렇다.
식물과 벌레에서 뽑은 물감은 화학 물감처럼 선명하지 않다.
빨아 쓰면 조금씩 빠진다.
빠진 색이 그 땅의 색이다.
여기서 이 부의 물음에 첫 대답이 나온다.
색은 어디에서 오는가.
그 땅의 사물에서 온다.
그리고 사물의 색은 시간을 지나온 색이다.
새 물감의 색이 아니라 쓰인 물감의 색이다.
이렇게 보면 세 가지가 따라온다.
첫째, 탁함은 부족이 아니다.
색을 흐리게 하는 것은 실패로 보이기 쉽다.
더 선명하게 못 한 결과처럼 보인다.
그러나 흙이 섞인 색은 흙이 섞인 만큼 정확하다.
그 땅에 순수한 색이 없으면 순수한 색이 거짓이 된다.
둘째, 색이 평면을 만든다.
깊이는 대개 색으로 만든다.
먼 것은 흐리게 하고 가까운 것은 진하게 한다.
공기에 습기가 있으면 실제로 그렇게 보인다.
마른 땅에서는 그렇지 않다.
먼 것도 선명하다.
그러면 색으로 거리를 만들 수 없다.
화면이 평면이 된다.
타마요의 화면에 깊이가 없는 것은 서양 근대 회화의 평면화 때문만이 아니다.
그가 본 땅이 그랬기 때문이기도 하다.
셋째, 색이 두께를 요구한다.
깊이를 못 만들면 무게로 대신한다.
얇은 색은 평면에서 가벼워진다.
두꺼운 색은 평면에서도 무겁다.
그래서 그는 색을 쌓았다.
훗날 그는 요철이 있는 판화 기법을 만드는 일에도 참여했다.
평평한 종이에 두께를 만드는 방법이었다.
평면에서 무게를 얻으려는 일이 계속되었던 것이다.
넷
변시지의 화면 앞에 서 보자.
두 사람의 색을 나란히 놓으면 닮은 것이 먼저 보인다.
둘 다 원색을 쓰지 않았다.
둘 다 흙이 섞인 색을 썼다.
타마요의 붉음에 이름이 없듯 마른 풀잎색에도 마땅한 이름이 없다.
황토색이 아니다.
노란색도 아니다.
바람에 오래 마른 풀의 색이다.
이름을 새로 지어야 하는 색이라는 점에서 두 사람은 같은 자리에 있다.
이름 없는 색은 그 땅에서만 만들어진다.
이름이 있는 색은 어디서나 살 수 있다.
닮은 것이 하나 더 있다.
두 사람 다 당대의 큰 흐름 옆에 서 있었다.
타마요의 시대에 멕시코에는 벽화가 있었다.
변시지의 시대에 한국에는 다른 길들이 있었다.
단색화가 그중 하나다.
반복과 절제로 도달한 진정한 성취다.
그 자리는 그 자리대로 온전하다.
변시지는 그 성취의 경쟁자가 아니었다.
다른 방향으로 간 사람이었다.
두 사람 다 주류의 반대편에 선 것이 아니다.
주류가 가지 않은 쪽으로 간 것이다.
반대와 다름은 다르다.
이제 차이를 보자.
방향이 반대다.
타마요는 떠나서 그 색을 지켰다.
파리에서도 오악사카의 색으로 그렸다.
변시지는 돌아와서 그 색을 찾았다.
서울에서는 없던 색이 제주에서 나왔다.
한쪽은 가지고 나갔고 다른 쪽은 가서 얻었다.
이 차이는 생애의 모양에서 나온다.
타마요는 그 땅에서 태어나 그 땅에서 자랐다.
색이 이미 몸에 있었다.
변시지는 다섯 살에 섬을 떠났다.
색이 몸에 없었다.
그는 오사카에서 배웠고 서울에서 그렸다.
비원을 십 년 넘게 그렸다.
그 시기의 색은 단정하고 차분하다.
마흔아홉에 제주로 갔다.
그리고 색이 바뀌었다.
그는 훗날 구술에서 그 색을 어떻게 찾았는지 말했다.
(한국문화예술진흥원 구술사, 2004–2005, 293–294쪽)
찾았다는 말이 중요하다.
가지고 있던 것이 아니다.
찾은 것이다.
또 하나의 차이가 있다.
타마요의 화면에는 과일이 있다.
익은 것, 자른 것, 씨가 보이는 것.
먹을 수 있는 것들이다.
변시지의 화면에는 먹을 수 있는 것이 거의 없다.
마른 풀과 돌과 바다.
그리고 노인.
수박을 자르면 붉은 속이 나온다.
마른 풀을 갈라도 아무것도 나오지 않는다.
한쪽의 땅은 준다.
다른 쪽의 땅은 견디게 한다.
같은 흙빛인데 뜻이 다르다.
오악사카의 붉음은 익은 색이다.
제주의 마른 풀잎색은 지나간 색이다.
익은 색에는 다음이 있다.
지나간 색에는 다음이 없다.
그래서 타마요의 화면은 무겁지만 어둡지 않고, 변시지의 화면은 가볍지만 어둡다.
다섯
시장에서 과일은 팔리거나 상한다.
팔리면 없어지고 상하면 색이 변한다.
어느 쪽이든 그 색으로 오래 있지 않는다.타마요는 그 짧은 색을 오래 남는 것으로 옮겼다.
섬에서 풀은 마르고 흩어진다.
겨울이 지나면 자리도 남지 않는다.변시지는 그 짧은 색을 오래 남는 것으로 옮겼다.
두 사람이 한 일이 같다.
없어지는 색을 없어지지 않게 하는 일.
붉음이 아직 화면에 있다.
이름은 아직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