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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 · 비평

구술채록 해제

The Oral History — A Research Guide
The Oral History — A Research Guide

한 화가가 자기 그림에 대해 직접 말한 기록이 있다.

2004년 12월 3일부터 2005년 4월 1일까지, 일곱 차례. 열네 시간.

그가 일흔여덟 살 때다.

이 글은 그 자료가 무엇이며, 이 아카이브가 그것으로 무엇을 확정했는지를 정리한다.


1. 자료 개요

정식 명칭『2005년도 한국 근현대예술사 구술채록연구 시리즈 · 변시지』
주관한국문화예술위원회 · 한국예술연구소
구술변시지 (1926–2013)
채록연구이인범
촬영신광수 · 박민주
기간2004. 12. 3 – 2005. 4. 1 · 7차
장소서귀포시립기당미술관 관장실 · 화백 자택
분량307쪽

저작권은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 있다. 본 아카이브는 연구·비평 목적의 발췌 인용에 한한다.


2. 회차별 주제

일자주제
12004. 12. 3출생과 성장 — 제주·오사카의 시공간, 오사카미술학교
22004. 12. 4도쿄 화단 — 데라우치 문하, 광풍상, 개인전, 귀국
32004. 12. 24귀국과 1950–60년대 한국 화단 — 귀국전, 초상화, 국전
42004. 12. 28서울 시대 — 서라벌예대, 정부의 감시, 폭풍의 형상화
52005. 1. 18제주도 시대 — 제주행, 비원화풍에서 제주화풍으로, 추사
62005. 1. 19예술과 풍토 Ⅰ — 제주 원풍경, 4·3, 대학 미술교육
72005. 4. 1예술과 풍토 Ⅱ — 독자적 작품세계, 누런색, 심상 풍경

3. 이 자료가 확정한 여덟 가지

각 항목은 화백 본인의 말로 뒷받침된다.


① 귀국 일자와 경로

채록연구자가 귀국 날짜를 묻자 그는 「57년 11월 15일」이라 답했다.
어떻게 왔는지 묻자 「노스웨스트. 동경에서 서울까지」라 했다. 김포에 내렸다.

사십칠 년 뒤에도 날짜를 정확히 기억하고 있었다.

바뀐 것 — 우리는 그가 배를 탄 것으로 적어 왔다. 비행기였다.

그러면 1958년 화신전의 26점은 어떻게 왔는가. 새로운 조사 과제다.

제2차, 「귀국」


② 110 × 83 cm — 화폭을 자른 이유

50호 규격은 117 × 91이다. 그가 쓴 캔버스는 110 × 83이다. 7cm씩 작다.

그는 그 까닭을 이렇게 설명한다. 인물만 그리면 양옆에 여백이 생기고, 그것이 거슬려 사람들은 테이블이나 꽃병을 그려 넣는다. 그러나 인물이 아름다워서 그리는 것인데 왜 그런 것을 놓느냐 — 그것은 무의미하다고. 그래서 50호를 인물 하나 그리기 좋게 잘라 버렸다.

캔버스만이 아니다. 틀(왁구)도, 액자도 따로 주문했다. 기성품이 하나도 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그것을 「내 만의 형태」, 「50호 변형」이라 불렀다.

바뀐 것 — 이것은 덜어냄이 아니라 고름이다.

「무엇을 뺄까」가 아니라 「무엇이 가장 아름다운가」를 먼저 정하고, 그 하나만 남긴다.

가장 아름다운 한 부분의 크기로 화폭을 맞춘 것이다. 순서가 반대다.

제2차, 「광풍회 출품과 최고상 수상」


③ 폭풍의 뜻 ★

이 아카이브에서 가장 무거운 대목이다.

제4차 채록의 소제목이 이렇게 이어진다.

「정부의 감시를 받다」 → 「정보기관의 공작에 휘말리다」 → 「폭풍의 형상화」

그리고 그는 말한다. 제주 사람들이 폭풍에 시달리듯 — 자신도 한국에 와서 수사기관에 시달렸다고. 그 시달림에 대한 저항이 폭풍이 되었다고. 그것을 예술로 승화시킨 것이라고.

그리고 덧붙인다.

「보통은 아무도 모르지.」

바뀐 것 — 우리는 그의 폭풍을 제주의 자연으로만 읽어 왔다.

그것도 맞다. 그러나 그것만은 아니었다.

바람 앞에 굽은 등은 자연 앞의 자세이자, 시대 앞의 자세이기도 했다.

제4차, 「폭풍의 형상화」


④ 마른 풀잎색은 어떻게 왔는가

이론에서 온 것이 아니다.

해변에 앉아 있다가 본 것이다. 볕이 너무 세서, 흰 것이 희다 못해 누레지는 순간을 보았다고 한다. 제주를 한 색으로 부른다면 그 누런색이 아니겠느냐 — 거기서 착상했다고.

그리고 그 색은 갈중이로 이어진다. 덜 익은 감을 찧어 물들인 옷. 흰 옷은 때가 잘 타니까, 가난해서 흰 옷을 못 입으니까 입던 색.

가난이 만든 색이다.

바뀐 것 — 「마른 풀잎색」은 관념이 아니라 관찰이다.

그리고 미학이 아니라 생활에서 왔다.

제7차, 「제주도의 풍토와 제주화」


⑤ 비원은 「귀족의 문화」였다

그는 자신이 십 년 넘게 그린 비원(祕苑)을 이렇게 규정한다.

「귀족의 문화다. 평민이 아니다.」

제주는 서민 생활에서도 가장 밑바닥이라고. 그래서 그 우아하고 화려했던 색을 전부 버렸다고.

바뀐 것 — 비원 시기는 「사람에게서 자연으로」가 아니다.

왕이 거닐던 정원이었다. 그리고 그는 그것을 버렸다.

이 시기는 단절이 아니라 긴 침묵이다.

제5차, 「비원화풍에서 제주화풍으로」


⑥ 1975–76년 작품이 거의 없는 이유

제주에 온 직후, 그는 모든 것을 버렸다.

색을 버리고, 기법을 버리고, 캔버스 틀까지 버렸다. 천을 가위로 오려 그리고, 마음에 안 들면 그 자리에서 지웠다.

바뀐 것 — 이 두 해의 공백은 침체가 아니라 파괴다.

스물셋에 그는 50호를 잘랐다. 쉰에 그는 틀 자체를 버렸다.

이십칠 년을 사이에 두고, 같은 손이 같은 일을 하고 있다.

제5차, 「비원화풍에서 제주화풍으로」


⑦ 「무감사」를 그는 자유로 읽었다

일전(日展)에 심사 없이 출품할 수 있는 자격 — 당대 자료가 「무감사(無鑑査)」 또는 「의촉출품(依囑出品)」이라 부른 것이다.

우리는 그것을 특권으로 읽어 왔다.

그는 그것을 자유로 읽었다.

일본에 남아 있었다면 스승과 제자의 계보에 눌려 그런 화풍에 대담하게 도전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그런데 한국에 오니 회원이라 심사받을 일도 없고, 누가 좋다 나쁘다 해도 상관없으니 마음대로 냈다고.

바뀐 것떠나 있었기에 할 수 있었다.

「무감사」는 특권이 아니라 거리(距離)가 준 자유였다.

제5차


⑧ 광풍회에 「해마다」 출품했다

그는 광풍회 도록이 해마다 온다고 했고, 「지금 90회지」라고 회차까지 알고 있었다. 2004년이다.

아틀리에에는 2006년 제92회 출품작 〈暴風の島〉가 남아 있다. 여든이었다.

바뀐 것 — 화집 연보는 1985년 제71회까지만 기록한다.

실제로는 1956년 제42회부터 2006년 제92회까지, 오십 년이다.

제주에서 그린 폭풍을, 그는 해마다 도쿄로 보냈다.

제5차 · 제6차


4. 이 자료가 뒤집은 네 가지 통설

통설자료가 말하는 것
여백은 제주에서 태어났다1948년, 캔버스를 주문할 때 시작되었다
폭풍은 제주의 자연이다자연이자, 시대에 대한 저항이다
그는 아무 말도 남기지 않았다한 번 말했다. 일흔여덟에.
제주행은 돌연한 결단이었다그림이 먼저 가 있었다 — 〈서귀포〉(1971) · 〈제주 바다〉(1974)

5. 이 자료를 어떻게 읽을 것인가

구술은 사료가 아니다. 그러나 사료보다 깊을 때가 있다.

기억은 틀린다. 사십 년 전 일을 정확히 말할 수 없다.
실제로 이 채록에도 연도가 어긋나는 대목이 있다.

그러나 문서가 말하지 못하는 것을 구술은 말한다.

〈폭풍〉이 왜 폭풍인지, 캔버스를 왜 잘랐는지, 누런색이 어디서 왔는지 —
어떤 문서에도 없다. 그가 말했기 때문에 우리가 안다.


이 아카이브의 원칙

  • - 구술은 구술로 표기한다. 문서와 구별한다.
  • - 연도·회차 등 사실관계는 문서로 교차 검증한다.
  • - 문서와 구술이 어긋나면 양쪽을 다 적고, 어긋난다고 밝힌다.

6. 원문 열람

전문은 한국예술디지털아카이브(DA-Arts)에서 열람할 수 있다.

본 페이지의 인용은 발췌이며, 구어의 호흡을 살려 옮겼다. 말줄임과 중복은 정리했으나 어휘와 어순은 바꾸지 않았다.

저작권은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 있다.
본 아카이브는 연구·비평 목적의 인용에 한하며, 전문을 게재하지 않는다.


7. 관련 지면

화가의 목소리주요 대목의 육성 인용 → 유배와 축복
서울, 1957–1975「폭풍의 형상화」가 바꾼 서사 → 서울 시기
휘어진 몸의 도상학캔버스·색·자세 → 도상학
연보구술로 확정된 사실의 위치 → 연보

채록연구자 이인범과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 감사드린다.
이 기록이 없었다면, 이 아카이브의 절반은 없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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