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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 · 비평

휘어진 몸의 도상학

The Iconography of the Bent Body
The Iconography of the Bent Body

한 화가가 누구를 그렸는가.
그 물음은 그가 무엇을 보았는가보다 먼저 온다.

이 글은 변시지가 그린 사람을 따라간다.


시대와 장소, 옷과 배경은 달라졌다.
그러나 그가 그린 몸의 한가운데에는 언제나 같은 물음이 남아 있다.

사람은 무엇을 견디며 살아가는가.


1. 최초의 몸은 얼굴을 감추고 있었다

변시지의 인물화를 이야기할 때 우리는 흔히 〈베레모의 여인〉에서 시작한다.

그러나 그보다 먼저 놓인 몸이 하나 있다.


두 무릎 사이로 고개를 깊이 숙인 나부.

얼굴이 보이지 않는다.
팔과 다리는 안쪽으로 접혀 있다. 몸은 바깥을 향해 열려 있지 않다.

보이기 위한 몸이 아니다. 아름다움을 내보이는 몸도 아니다.

자기 몸속으로 숨어든 사람이다.


이름도, 직업도, 나이도 알 수 없다.

남아 있는 것은 오직 자세다.

보통의 인물화가 얼굴로 한 사람의 신분을 드러낸다면,
이 나부는 얼굴을 지움으로써 오히려 인간의 근원적인 상태를 보여준다.

고개를 들 수 없는 피로. 몸을 접어야 견딜 수 있는 고독.


그 몸은 진 몸처럼 보인다. 그러나 쓰러지지 않았다.

앉아 있다. 버티고 있다.

두 무릎 사이에, 마지막으로 남은 온기를 간직하고 있다.


그리고 그는 이 그림을 자기 전시의 얼굴로 골랐다

1953년 3월, 오사카 한큐백화점 7층 양화화랑. 그의 세 번째 개인전.

안내장 표지에 실린 그림이 이 나부였다. — 60점 목록 20번, 〈裸體婦〉.

스물일곱의 화가가, 자기 전시의 얼굴로 얼굴 없는 몸을 골랐다.

그 그림은 지금 소재불명이다.


변시지의 인물화에서 굽은 몸은 이때부터 이미 단순한 형태가 아니었다.

인간이 세계와 맺는 하나의 태도였다.


2. 일본 — 몸에서 얼굴로

1958년 화신 회고전에 걸린 「在日本時代 作品」 60점.
그중 인물화의 목록은 이렇다.

#작품연도
6FEMME1947
7베레모의 여인1948
8만도린을 가진 여자1948
10바이올린을 가진 남자1949
12女人과 책1951
13파잎을 문 남자1949
14女人 座像1949
17「네모(nemo)」의 座像1951
18K氏의 像1952
24A氏의 像1954
26三人의 裸體婦1956

이름이 없다.

여자. 남자. 만돌린을 든 여자. 파이프를 문 남자.
초상조차 「K씨」이고 「A씨」다.


화폭

그가 쓴 캔버스는 110 × 83 cm다.
50호 규격(117 × 91)보다 7cm씩 작다.

2004년 구술채록에서 그는 그 까닭을 말한다.

50호는 조금 위아래 조금 더 있거든. 인물만 그리면 양쪽에 이 여백이 생긴단 말이야.

거슬리니까, 뭔가 그 인물 뒤에 테이블을 놓는다든지, 거기에 또 꽃병을 놓는다든지 —

다른 사람들도 다 그렇게 하는데.

그니까 내가 생각할 때는 인물이 아름다워서 그리는데 왜 옆에 있는 테이블이라든지

꽃병이라든지 가져다 놓느냐? 이건 무의미하다.

그래서 내가 그 50호짜리를 인물 하나 딱 그리기 좋게 이렇게 짤라 버렸다고.


그는 배경을 덜어낸 것이 아니다.

사람 이외의 것이 들어올 자리를, 처음부터 만들지 않았다.

〈베레모의 여인〉의 뒤에는 어둠뿐이고, 〈만도린을 가진 여자〉의 뒤에는 초록 벽뿐이다.


침묵이 얼굴 안으로 들어오다

〈베레모의 여인〉의 얼굴은 정면을 향한다.

그러나 쉽게 자신을 열어 보이지 않는다.
입은 다물려 있고, 눈빛은 바깥보다 안쪽을 향한다.

무릎 사이에 얼굴을 묻었던 그 침묵이, 이제 얼굴 안으로 옮겨간 것이다.

나부가 온몸으로 품고 있던 고독을, 일본 시기의 인물들은 눈과 입과 굳은 표정으로 품기 시작한다.


3. 서울 — 직함

1957년 11월 15일, 그는 노스웨스트 항공기를 타고 김포에 내렸다.
서울대학교의 초빙이었다.

이듬해 화신 회고전의 목록에는 초상 일곱 점이 새로 들어간다.

#표기
50Portrait of Dr. Y
51·52Portrait of Dr. K
53Dr. S
54Dr. R
55Dr. P
56Mrs. K

그가 실제 모델을 두고 그린 사람들의 명단이 남아 있다.

申泰煥 — 서울대학교 총장
權重輝 — 서울대학교 총장
李敭河 — 서울대학교 학장
金善琪 — 문교부 차관
金連甲 — 한양대학교 총장
邊時敏 — 제주대학교 학장
李升學 — 서라벌예술대학 학장
朴仁出 — 마포고등학교 교장
尹日善 — 서울대학교 총장 · 陸芝修 · 張永淑 · 홍류유

일본에서 그는 얼굴을 그렸다.
서울에서 그는 직함을 그렸다.

「베레모의 여인」과 「Dr. S」 사이에 십 년이 있다.
그 십 년 동안 그의 붓은 이름 없는 사람에게서 이름 있는 사람에게로 옮겨 갔다.


다만 인과는 쓰지 않는다

「초상을 그려야 해서 대학을 떠났다」고 쓸 수 없다.
그런 문서는 없다.

총장 세 사람과 학장, 그리고 교수들이 그에게 초상을 맡겼다.
배척한 사람에게 자기 얼굴을 맡기지는 않는다.

그리고 이듬해, 마포고등학교의 후원으로 그의 제5회 개인전이 열린다.

두 사실이 함께 있다. 그 사이는 비어 있다.


4. 그런데 같은 해에

목록에는 세 점이 더 있다.

#작품연도
39지게꾼1958
41소와 두 사람1958
44나무 패는 사람1958

총장의 초상을 그리던 그해에, 그는 지게 진 사람도 그렸다.

같은 손이, 같은 해에.
Dr. Y와 지게꾼이 한 목록에 나란히 있다.


지게꾼 — 나부와 노인을 잇는 몸

지게꾼에게서 먼저 보이는 것은 얼굴이 아니다. 등에 얹힌 무게다.

몸은 앞으로 기울고, 목과 허리가 하나의 곡선을 이룬다.

그는 스스로 허리를 굽힌 것이 아니다. 삶이 그의 등을 눌렀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서 있다.


무릎 사이에 얼굴을 묻은 나부는 자기 안으로 접힌 몸이었다.
지게꾼은 짐을 등에 지고 앞으로 나아가는 몸이다.

두 자세는 닮았다.

등이 휘어 있다는 것. 얼굴보다 몸이 먼저 말한다는 것.
그리고 쓰러지지 않았다는 것.


60점 가운데 당대 언론이 도판으로 실은 그림은 〈지게꾼〉 하나뿐이다.

지금 그 그림은 소재불명이다. 남아 있는 것은 신문 지면의 망판 도판뿐이다.

그림은 사라졌고, 자세는 남았다.


5. 비원 — 사람이 사라진 시간

1958년 9월, 그는 마포고등학교 교사가 되었다.

1960년대의 그가 그린 것은 비원(祕苑)이었다.
창덕궁 뒤의 정원. 오래 닫혀 있던 곳.

붓이 가늘어졌다. 기와 한 장, 나뭇잎 하나까지 그렸다.
십 년 넘게 그것만 그렸다.


연도광풍회전작품
1965제51회秘苑 半島池
1966제52회秘苑 老木
1968제54회韓國秘苑 勝在亭
1969제55회韓國秘苑 尊德亭
1971제57회愛蓮亭 (100호)

서울에서 그린 비원을, 그는 도쿄 도미술관에 걸었다.


그러나 그곳은 순수한 자연이 아니었다

애련정. 존덕정. 부용정. 승재정.

왕이 거닐던 정원이다.

훗날 그는 그것을 이렇게 부른다.

비원 스타이루라고 하는 건 귀족의 문화다. 평민이 아니다.

…제주도는 아주 서민생활에서도 아주 더 밑바닥. 그런 어려운 역경.

그래서 그 우아하고 화려했던 색을 전부 버린 거예요.


사람이 사라진 시간

그곳에는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사람의 흔적이 남아 있다.

비어 있는 정자. 아무도 걷지 않는 길. 오래된 나무와 고요한 연못.

부재한 인간을 말하는 화면이다.


이 시기는 단절이 아니다.

긴 침묵에 가깝다.

사람이 화면에서 사라진 동안, 그의 붓은 더 깊은 자세를 준비하고 있었다.

얼굴과 직함, 개인의 외모를 넘어 —
인간을 하나의 존재 방식으로 그리기 위한 시간이었다.

그리고 그 준비가 끝났을 때, 그는 비원의 화려한 색을 버리고 제주로 향한다.


6. 제주 — 얼굴을 잃고 자세를 얻다

1975년, 쉰 살에 그는 서울을 떠났다.

떠나기 전부터 그림이 먼저 가 있었다.

연도작품
1971西歸浦
1972西歸浦 風景
1974濟州 바다

2005년 구술채록에서 그는 그 색이 어떻게 왔는지 말한다.

**하루는 해변가에서 이렇게 보다 보니까, 태양빛에 딱 떠있는데.

하얀 것이 하얗다 못해서 누렇게 그런 변하는 현상을 봤다고.**

제주도라고 하면 색으로 상징하면은 무슨 색이라고 할 수가 있을까.

그래서 이제 누런색이 아니겠느냐 하는데 우선 착안을 하고.

그리고 그 색은 갈중이로 이어진다.
덜 익은 감을 찧어 물들인 옷. 때가 덜 타라고 입던 색.

가난이 만든 색이다.


얼굴을 잃고, 자세를 얻다

제주에서 그의 인물은 다시 나타난다.

그러나 일본 시기처럼 얼굴을 크게 드러내지 않는다.
서울 시기처럼 이름이나 직함을 갖지도 않는다.

지팡이를 짚은 노인. 바람에 등을 굽힌 사람. 조랑말 곁에 선 몸.

제주의 인물은 다시 얼굴을 잃는다.

그 대신 자세를 얻는다.


바람 속에서 몸은 한쪽으로 기울고, 지팡이는 땅을 붙잡는다.
머리는 낮아지고, 어깨는 안으로 웅크린다.

그는 바람을 이기려 하지 않는다.

몸을 낮추어, 바람이 지나가게 한다.


이것은 굴복이 아니다.

제주에서 곧게 서겠다는 것은, 부러지겠다는 말일 수도 있다.

살아남으려면 몸을 낮추고, 기울고, 흔들려야 한다.

그가 그린 굽은 노인은 자연 앞에 진 사람이 아니다.
자연과 함께 사는 법을 몸으로 익힌 사람이다.


그리고 이 자세는 1958년 서울에서 그린 그 자세다.

지게를 진 몸. 도끼를 든 몸.


7. 고독은 노동이 되고, 노동은 풍토가 되었다

시기그가 그린 사람
나부 (1952–53)자기 안으로 접힌 몸
일본 (1943–1957)이름 없는 얼굴 — 女人 · K氏 · A氏
서울 (1958)직함 — 총장 · 학장 · 차관
서울 (1958)그리고 지게꾼 · 나무 패는 사람 · 소와 두 사람
서울 (1960–74)사람이 사라진 정원 — 애련정 · 존덕정 · 부용정
제주 (1975–2013)바람 속에 굽은 등

나부는 자기 몸 안으로 숨어들었다.

지게꾼은 삶의 무게를 등에 졌다.

제주의 노인은 바람을 온몸으로 받아냈다.


고독이 노동이 되었고, 노동이 풍토가 되었다.


나부가 한 사람의 슬픔을 품은 몸이었다면, 제주의 노인은 한 사람을 넘어선다.

그는 제주에서 살아온 수많은 사람의 몸이다.
가난과 폭풍, 역사와 침묵을 견뎌온 사람의 몸이다.

얼굴이 사라진 자리에 시대가 들어왔다.


몸이 풍토가 되다

마른 풀잎색의 하늘과 땅. 조랑말과 까마귀. 기울어진 초가와 나무.

그 사이에서 사람의 몸도 풍경과 같은 색을 띤다.

인간은 풍경 앞에 놓인 대상이 아니다.
풍경을 이루는 일부가 된다.


몸이 풍토가 된 것이다.


삼십 년이 걸렸다.

이름 없는 사람에게로 돌아오는 데.


8. 그가 그린 존엄

이 계보는 「높은 사람에서 낮은 사람으로」의 하강이 아니다.

그는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1948년, 스물셋에 그는 이미 화폭을 잘랐다.
테이블과 꽃병을 놓지 않기 위해서다.

「인물이 아름다워서 그리는데」 — 그가 말한 그대로다.
아름다움에 기여하지 않는 것은 전부 불필요했다.


그러니 덜어냄이 아니라 고름이다.

「무엇을 뺄까」가 아니라 「무엇이 가장 아름다운가」를 먼저 정하고, 그 하나만 남긴다.

그리고 그가 마지막으로 고른 것은 바람 속에 굽은 등이었다.


그가 스물셋일 때, 스승 데라우치 만지로는 이렇게 적었다.

質実、重厚な宇城君の仕事はまた新鮮で、しかも清浄である

技巧のけがれが見えないとも云える。

— 제1회 개인전 추천사, 1949

「기교의 더러움이 보이지 않는다.」

기교가 없다는 말이 아니다. 그는 광풍상을 받았다.
기교를 자랑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9. 말없이

그는 이 이야기를 설명하지 않았다.

서울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왜 대학을 떠났는지 — 오십 년 가까이 아무 기록도 남기지 않았다.

그러다 일흔여덟에, 딱 한 번 말했다.

폭풍에 시달리는 시달림, 내가 한국에 와서 그런 수사기관에서 시달림.

이런 시달림에 대한 저항, 저항이 폭풍으로…

보통은 아무도 모르지.

— 2004년 구술채록


보통은 아무도 모르지.

그는 모르게 두었다. 알아 달라고 하지 않았다.

대신 그렸다.


바람 앞에 굽은 등은 견디는 자세다.

그것이 자연 앞의 자세이자, 시대 앞의 자세이기도 했다.


시작에는 무릎 사이에 얼굴을 묻은 나부가 있었다.
끝에는 바람 속에서 지팡이를 짚은 노인이 있었다.

두 사람은 다른 사람이 아니다.

오랜 세월을 건너온 하나의 몸이다.


자기 슬픔 속에 웅크리고 있던 몸이,
세상의 무게를 등에 지고,
마침내 거대한 바람 속으로 걸어 나온 것이다.


변시지는 평생 사람을 그렸다.
그러나 끝내 남긴 것은 얼굴이 아니었다.

휘어지면서도 쓰러지지 않는, 사람의 자세였다.

그리고 그것은 말없이 시대를 짊어진 사람의, 낮은 존엄이다.


본문의 사실 기술은 실물 문서·당대 보도·구술채록에 근거한다.
근거가 없는 인과는 사실로 적지 않았다.

근거 자료

  • - 「在日本時代 作品」 60점 목록 (1958 화신 회고전 팜플렛) — 아틀리에 소장
  • - 데라우치 만지로 추천사 (제1회 개인전 안내장, 1949)
  • - 광풍회전 출품작 도판 35점, 제42회(1956)–제92회(2006) — 아틀리에 소장
  • - 『우성 변시지 연보』 pp.169–173
  • - 『2005년도 한국 근현대예술사 구술채록연구 시리즈 · 변시지』

한국문화예술위원회 · 채록연구 이인범 · 전 307쪽
제2차(캔버스) · 제4차(폭풍) · 제5차(비원에서 제주로) · 제7차(누런색)

인용에 관하여
구술채록 인용은 발췌이며, 구어의 호흡을 살려 옮겼다. 저작권은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 있으며,
본 아카이브는 연구·비평 목적의 인용에 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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