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시지 아틀라스 THE BYUN SHI-JI ATLA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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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nologue

바람을 삼킨 화가Byun Shiji — A Monologue in Three Voic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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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목소리(바람·화가·그림) × 10장. 34개 언어 각각이 독립된 번역/새로운 글로 완성되어 있습니다. 위 언어 선택기로 전환하세요.

바람

I · 나는 먼저 왔다

사람의 발자국이 이 땅에 찍히기 전, 나는 이미 검은 돌 위를 지나고 있었다. 그보다 더 오래전, 흙을 품고 바다를 건너온 한 여인이 있었다 했다. 그녀가 앉 아 숨을 내쉴 때 산이 솟았고, 그녀가 사라진 뒤 나만 남았다. 그때부터 나는 이 땅 위를 흘러다녔다. 조랑말이 태어나기 전에도 나는 그 갈기 의 결을 알았다. 까마귀가 울기 전에도 나는 그 울음의 그림자를 알았다. 마른 풀잎이 제 시간을 다 살아낸 색이 되기 전에도, 나는 그 곁에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한 사내가 돌아왔다. 지팡이를 짚고, 어깨를 구부린 채, 바다 를 등지고. 나는 그를 반기지 않았다. 다만 그의 옷자락을 잡아당겼고, 그의 붓끝을 흔들 었다. 먼 데서 온 자는 곧장 이곳에 살 수 없다. 낮아지는 자만이 비로소 나를 그릴 수 있다. 나는 그를 시험하기 위해, 오늘도 분다.

II · 나는 그를 알아보지 못했다.

수많은 배가 이 섬에 닿았고, 수많은 사람이 떠났다. 조랑말의 갈기도, 까마귀 의 울음도 나는 미리 알았다. 그러나 사람의 이름은 외우지 않는다. 오는 자는 오고, 가는 자는 간다 ― 그것이 내가 아는 전부였다. 그러나 그 사내는 달랐다. 짐을 풀자마자 바다 앞에 섰고, 한참을 움직이지 않 았다. 나는 그를 맞이하지 않았다. 바닷소금을 그의 두 눈에 뿌렸다. 모랫바람을 그의 입속까지 밀어 넣었다. 외투 자락을 찢을 듯 잡아당겼다. 그가 들고 온 모자를 굴려 바다 쪽으로 쫓아버렸다. 육지에서 온 자를 나는 그렇게 맞이했다 ― 돌담에 부딪혀 되돌아오는 바람으 로, 처마 끝을 찢는 휘파람으로. 그는 비틀거렸다. 한쪽 무릎이 젖은 돌 위로 꺾였다. 지팡이가 돌 틈에 끼었다. 나는 그의 어깨를 뒤에서 밀었다. 그는 흔들렸으나, 돌아서지 않았다. 도쿄에서 온 그림쟁이라 했다. 서울에서도 이름이 있었다 했다. 나는 그런 것을 모른다. 다만 그가 마른 풀잎 위에 오래 앉아 있는 것을 보았다. 해가 지고, 또 해가 떴다. 그는 여전히 거기 있었다. 그제야 나는 알았다 ― 이 사내는 떠나지 않을 사람이라는 것을. 나에게 그려질 사람이 아니라, 나를 그릴 사람이라는 것을. 나는 처음으로, 한 인간 앞에서 숨을 죽였다.

III · 나는 그의 붓을 흔들었다

숨을 죽였다 하여, 그를 놓아준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나는 그의 붓을 흔들었 다. 밤이면 문틈으로 들어가 휘파람을 불었다. 창호지를 찢었고, 이불을 날려 올 렸고, 물그릇을 넘어뜨렸다. 그는 얼굴을 가리고 돌아누웠으나, 짐을 싸지 않았 다. 그래서 나는 낮에도 그를 놓아주지 않았다. 그가 처음 이젤을 펼친 날, 나는 그것을 쓰러뜨렸다. 캔버스를 모래로 더럽혔 고, 물감통을 엎었다. 나는 그가 화를 내기를 기다렸다. 육지의 화가들이 그러 했듯, 등을 돌리고 떠나기를. 그러나 그는 다시 이젤을 세웠다. 무릎을 꿇고, 모래를 털어내고, 다시 붓을 들 었다. 나는 더 세게 불었다. 그의 손목이 떨렸고, 선이 흐트러졌다. 그때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그는 떨리는 손을 멈추려 하지 않았다. 오히려 내 흔들림에 자신을 맡겼다. 그의 검은 선은 더 거칠어졌고, 더 굽었고, 더 살아났다. 그 순간, 나는 알아차렸다 ― 굽은 것은 약한 것이 아니라 견딘 모양이라는 것 을. 나는 그를 방해하려 했으나, 나는 그를 그리고 있었다. 내가 흔든 자리마다 그의 그림이 자라났다. 내가 지우려 한 자리마다 그의 형상이 깊어졌다. 그날 처음으로 나는 깨달았다 ― 어떤 사람은 바람을 이기지 않고, 바람이 되어 버린다는 것을. 나는 조금, 두려웠다.

IV · 나는 조랑말을 보냈다

그가 무엇을 그릴지 정하지 못해 헤매던 어느 아침이었다. 나는 들판의 조랑말 한 마리를 그의 앞으로 밀어 보냈다. 이번에는 빼앗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작고, 마르고, 갈기가 헝클어진 짐승이었다. 육지의 말처럼 크 지도, 빛나지도 않았다. 나는 보고 싶었다. 그가 이 초라한 짐승을 어떻게 대하는지를. 그는 오래 보았다. 조랑말의 굽은 등을, 처진 목을, 바람에 쓸린 갈기를. 웃지 않았고, 가엾어하지도 않았다. 다만 자기 어깨를 만져보았다. 그제야 나는 알았다 ― 그는 그 짐승에게서 자기 자신을 보고 있었다. 육 지에서 밀려난 자. 큰 무대에서 작은 섬으로 돌아온 자. 허리가 굽고, 갈 기가 헝클어진 자. 이 섬의 돌담도 그러하다. 높이 자랑하지 않는다. 서로 기대어 낮게 선 다. 낮음이 오래 견디는 방식이다 ― 조랑말도, 그도, 이미 알고 있었다. 그의 붓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조랑말의 윤곽이 검은 선으로 캔버스에 새겨졌다. 나는 더 이상 흔들지 않았다. 그날, 한 짐승과 한 사람이 같은 풍토 속에서 형제가 되었다. 나는 그것 을 보았다. 나는 처음으로, 그를 위해 잠잠해졌다.

V · 나는 까마귀를 깨웠다

나는 까마귀를 깨웠다. 그가 조랑말을 그리는 일에 익숙해질 무렵이었다. 나는 늙은 팽나무 가 지에 잠든 까마귀 한 마리를 흔들어 깨웠다. 검고, 야위고, 한쪽 눈이 흐 린 새였다. 다른 까마귀들이 떼를 지어 날아갈 때, 홀로 남겨진 새였다. 나는 그 새를 그의 화실 창가로 보냈다. 까마귀는 울지 않았다. 다만 그를 오래 바라보았다. 그도 붓을 내려놓 고, 그 새를 마주 보았다. 둘이 서로의 침묵을 견디는 동안, 나는 그 사 이를 지나며 들었다. 까마귀가 무엇을 말했는지, 그는 알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날 밤, 그의 그림 속에 검은 새 한 마리가 들어왔다. 바다 위를 낮게 나는 새. 혹 은 지팡이 짚은 노인의 어깨 너머에서 지켜보는 새. 까마귀는 길조가 아니라고들 한다. 그러나 나는 안다 ― 까마귀는 떠나 지 못한 자들의 영혼이라는 것을. 그도 알았을까. 그의 그림 속 까마귀가, 실은 자기 자신이라는 것을. 나는 그날 이후, 까마귀의 울음을 그의 화실 쪽으로만 실어 날랐다.

VI · 나는 바다를 일으켰다

나는 바다를 일으켰다. 그의 붓이 너무 익숙해지던 어느 가을이었다. 나 는 먼바다에서부터 큰 물결을 끌어올렸다. 사흘 밤, 사흘 낮을 쉬지 않 고 불었다. 지붕이 날아갔고, 어선이 부서졌고, 사람들의 불안이 바람 속에 섞였다. 나는 그가 두려워하기를 바랐다. 인간이 마땅히 가져야 할 그 두려움을, 다시 한번 가르치고 싶었다. 그는 화실 문을 열고 나왔다. 도롱이도 걸치지 않은 채, 지팡이 하나만 쥐고서. 바닷가 절벽 위에 섰다. 파도가 그의 발 아래에서 산처럼 일어 섰다 무너졌다. 나는 그를 밀었다. 그의 몸이 휘청였으나, 그는 무릎을 꿇지 않았다. 오 히려 두 팔을 벌렸다. 그때 그가 무엇을 보았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다만 그의 눈은 먼바다 끝, 내가 태어난 자리를 향해 있었다. 그곳은 누군가 평생 바라보던 수평 선이었는지도 모른다. 돌아오지 않는 이를 기다리던 사람들이 오래 눈 을 두던 자리였는지도 모른다. 바다를 너무 오래 본 사람은 때로 돌이 된다. 나는 그것을 오래전부터 알 고 있었다. 그 바위들 곁을 지날 때마다, 나는 소리를 낮춘다. 그날도 그랬다. 그의 눈이 향한 곳은 폭풍의 중심이 아니라, 폭풍 너머 의 기다림이었다. 그날 이후, 그의 그림 속 바다는 잔잔해지지 않았다. 언제나 요동쳤고, 언제나 검었고, 언제나 살아 있었다. 그리고 그 바다를 등지고 선 사람 이 하나, 반드시 화면에 있었다. 지팡이를 짚은 노인이었다. 혹은, 돌이 되어가는 사람이었다. 폭풍은 지나갔다. 나는 그를 꺾지 못했다. 나는 그에게 바다를 주었다.

VII · 나는 그의 색을 빼앗았다

나는 그의 색을 빼앗았다. 내가 준 바다는, 그가 가진 색으로는 그릴 수 없었다. 그가 도쿄에서 가 져온 물감들 ― 푸른 코발트, 붉은 카드뮴, 깊은 군청. 나는 그것들을 하 나씩 마르게 했다. 습기로 굳히고, 햇볕으로 바래게 하고, 소금기로 갈 라지게 했다. 나는 그가 빈손이 되기를 바랐다. 육지의 색이, 도쿄의 색이, 서울의 색 이 그에게서 모두 떠나기를. 그는 한참을 빈 캔버스 앞에 앉아 있었다. 무엇을 칠해야 할지 모르는 사 람처럼. 혹은 무엇을 칠하지 말아야 할지 비로소 아는 사람처럼. 어느 날 아침, 그는 들판으로 나갔다. 나는 그의 뒤를 따라갔다. 그는 마 른 풀잎 한 줌을 손에 쥐었다. 오래 들여다보았다. 그것은 초록도, 노랑 도, 갈색도 아니었다. 여름을 다 살아내고, 가을을 견디고, 겨울 앞에 선 색이었다. 시간이 빚어낸 색, 풍토가 천천히 우려낸 색. 그는 화실로 돌아와, 그 색을 만들었다. 한 번에 만들어지지 않았다. 수 십 번을 섞고, 덧칠하고, 지웠다. 마침내 그의 캔버스 위에 ― 마른 풀잎의 색이 떠올랐을 때, 나는 알았 다. 내가 빼앗은 것은 그의 색이 아니라, 그가 마땅히 버려야 할 색이었 다는 것을. 그는 이제 나의 색으로 그린다.

VIII · 나는 그의 이름을 잊게 했다

나는 그의 이름을 잊게 했다. 그가 처음 이 섬에 왔을 때, 많은 이름을 가지고 있었다. 도쿄에서 받은 상의 이름. 서울의 화단이 불러주던 이름. 스승이 남긴 이름. 동료들이 기억하던 이름. 그 이름들은 무거웠다. 그가 붓을 들 때마다, 이름들이 먼저 캔버스 위에 내려앉았다. 나는 그것들을 하나씩 날려 보냈다. 먼저 도쿄의 이름을 가져갔다. 그가 더 이상 일본어로 꿈꾸지 않게 될 때까지 ― 나는 그 이름을 바닷속에 묻 었다. 다음으로 서울의 이름을 가져갔다. 편지가 끊기고, 전시 소식이 들 리지 않고, 그를 찾는 발길이 뜸해질 때까지 ― 나는 기다렸다. 그는 점점 가벼워졌다. 어깨에 얹혔던 것들이 떨어져 나갔고, 허리가 굽 은 만큼, 마음은 낮아졌다. 어느 해질녘, 그는 그림 한 귀퉁이에 작은 글씨로 서명을 했다. 뜻 지(志) ― 그가 스스로에게 새긴 이름이었다. 크지 않았고, 자랑스럽지도 않 았다. 그저 한 사람이 한 뜻을 품고 한 자리에 서 있다는 표시였다. 그것 은 이름이자 제목이었다. 나는 그 이름은 가져가지 않았다. 이름을 잃은 자만이, 비로소 자기 이름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을 ― 그날 한 사람이 증명했다. 나는 그의 새 이름 위로, 가만히 한 번 지나갔다.

IX · 나는 그의 침묵을 들었다

나는 그의 침묵을 들었다. 이름을 새긴 그날 이후, 그는 말이 줄었다. 나는 그것이 슬픔인 줄 알았 다. 세상이 그를 잊어가는 데 대한, 한 사람의 조용한 체념인 줄 알았다. 그러나 아니었다. 그의 침묵은 비어 있지 않았다. 그 안에는 바다 소리가 있었다. 풀잎이 마르는 소리가 있었다. 조랑말의 숨소리가 있었다. 까마귀의 날갯짓이 있었다. 그리고 그 모든 소리 아래에 ― 내가 있었다. 그는 듣고 있었던 것이다. 말하지 않음으로써, 비로소 풍토의 말을 듣고 있었던 것이다. 어느 날, 육지에서 온 손님이 그에게 적적하지 않으냐 물었다. 그는 빙 그레 웃기만 했다. 대답 대신 창문을 조금 더 열었다. 나는 그 틈으로 들 어가, 손님의 옷자락을 한 번 흔들고 나왔다. 그것이 그의 대답이었다. 나는 그날, 그의 침묵을 가장 깊은 음악으로 들었다.

X · 나는 그를 두고 떠난다

나는 그를 두고 떠난다. 오늘 아침, 나는 그의 화실 창을 마지막으로 한 번 흔들었다. 그는 돌아 보지 않았다. 붓을 든 손이 멈추지 않았다. 처음 그가 이 섬에 왔을 때, 나는 그를 시험했다. 이젤을 쓰러뜨렸고, 색 을 빼앗았고, 이름을 가져갔고, 바다를 일으켰다. 나는 그가 무릎 꿇거 나, 떠나거나, 부서지기를 바랐다. 그는 무릎을 꿇었으나 떠나지 않았고, 부서졌으나 다시 일어섰다. 그리고 어느 사이엔가 ― 그는 나를 닮아갔다. 허리는 굽었으나 흔들리 지 않았고, 말은 줄었으나 깊어졌다. 그의 검은 선은 나의 결을 닮았고, 그의 마른 풀잎색은 나의 시간을 닮았다. 이제 그는 나의 시험이 필요하지 않다. 그는 스스로 풍토가 되었다. 나는 더 이상 그를 흔들지 않을 것이다. 다만 그의 그림 곁에 머물 것이 다. 그가 붓을 놓는 날, 나는 그의 마지막 숨을 받아 다시 들판으로, 바다 로, 마른 풀잎 속으로 돌려보낼 것이다. 나는 먼저 왔으나, 그는 나보다 오래 남을 것이다. 그의 캔버스 안에서 ― 나는 영원히 불고 있을 것이다.

화가

I · 나는 결국 돌아왔다

나는 결국 돌아왔다. 여섯 살에 이 섬을 떠났다. 오사카로, 도쿄로, 그리 고 다시 서울로. 그 사이 사십 년이 지났다. 사람들은 내가 출세했다 했다. 일본의 큰 상을 받았고, 서울의 화단에 이름을 올렸고,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다. 나는 그것들이 길인 줄 알 았다. 그러나 어느 날 문득, 내 그림을 들여다보다가 알았다. 이 그림 어디에 도 나는 없다는 것을. 스승의 흔적이 있었고, 시대의 유행이 있었고, 서 양의 기법이 있었다. 나만 없었다. 그날 밤 나는 오래 잠들지 못했다. 창밖으로 서울의 불빛이 흘렀고, 그 불빛 너머 어딘가에서 ― 바람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오래전, 어머니 의 등에 업혀 떠나던 날의 그 바람이었다. 나는 짐을 쌌다. 사람들은 만류했다. “그 외딴 섬에 가서 무엇을 하시려 오.” 나는 답하지 못했다. 다만 알고 있었다. 내가 가는 것이 아니라, 무 엇인가가 나를 부르고 있다는 것을. 비행기에서 내려 처음으로 그 바람을 다시 맞았을 때, 나는 알았다. 바 람은 포근하지 않았다. 나를 알아보지 못하는 듯 거칠게 밀쳤고, 옷자락 안으로 소금기를 불어 넣었고, 돌아선 내 어깨를 뒤에서 두 번 쳤다. 그 거친 손길이, 이상하게도 낯설지 않았다. 어린 시절 어머니의 등에서 받 던 바로 그 바람이었다. 어머니는 그 바람을 ‘할망’이라 부르셨다. 음력 이월 초하루에 서쪽 바다 에서 와서, 열닷새를 머물다 떠난다고 하셨다. 떡을 지어 바닷가에 올리 는 일을 잊으면 안 된다 ― 그렇게 이르셨다. 작은 떡 접시와, 짠 바닷바 람과, 어머니의 손 냄새. 도쿄의 거리를 걸을 때도, 서울의 화실에서 붓을 들 때도, 나는 그 할망 의 이름을 한 번도 떠올리지 않았다. 사십 년 동안 한 번도. 나는 그것이 미신이라 배웠고, 어리석은 옛 풍습이라 여겼다. 그러나 비행기에서 내리는 그 순간 ― 그 이름이 몸으로 먼저 돌아왔다. 내 머리가 기억하지 않는 것을, 내 어깨가 기억하고 있었다. 내 얼굴에 닿는 바람이 어머니의 목소리로 나를 불렀다. 나는 떠난 적이 없었다는 것을. 다만 오래, 아주 오래 ― 돌아오는 길이 었다는 것을.

II · 나는 빈손이었다

나는 빈손이었다. 돌아온 첫 해, 나는 아무것도 그리지 못했다. 화실을 마련했고, 캔버스를 세웠고, 물감을 풀었다. 붓을 들었으나 ― 손 이 움직이지 않았다. 무엇을 그려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도쿄에서 배운 기법은 이 땅에서 어색했다. 서울에서 그리던 풍경은 이 곳에 없었다. 내가 가진 모든 것이, 이 자리에서는 쓸모없었다. 부끄러웠다. 사십 년을 그려온 사람이, 빈 캔버스 앞에서 어린아이처럼 서 있었다. 나는 화실 문을 닫고 들로 나갔다. 무엇을 보려 한 것이 아니었다. 다만 그 자리에 있고 싶었다. 이 땅의 흙 위에, 이 풍토의 바람 속에. 해가 뜨고 졌다. 풀잎이 흔들렸고, 조랑말이 지나갔다. 나는 아무것도 하 지 않았다. 다만 보았다. 낮은 초가 한 채 앞에서 오래 붓을 멈춘 날도 있 었다. 형상보다 자세가 먼저 보였다. 그 앞에서 나는, 그림은 서두르면 안 된다는 것을 천천히 배웠다. 그렇게 한 해가 갔다. 사람들은 내가 그림을 포기한 줄 알았을 것이다. 나도 가끔은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나 지금 돌이켜 보면 ― 그 해가 가장 중요한 한 해였다. 손에 쥔 것 을 모두 내려놓는 데에 한 해가 걸렸다. 빈손이 되는 데에 한 해가 걸렸 다. 빈손이 되어야, 비로소 풍토가 내 손에 무엇인가를 쥐여줄 수 있다는 것 을 ― 그때 나는 아직 알지 못했다. 다만 기다렸다.

III · 나는 풀잎의 색을 보았다

나는 풀잎의 색을 보았다. 그해 늦가을이었다. 들에 나가 앉아 있다가, 무심히 손을 뻗어 풀잎 한 줄기를 꺾었다. 그것을 손바닥 위에 올려놓 고 한참을 보았다. 이상한 일이었다. 사십 년을 그려왔으면서, 나는 풀잎의 색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초록이라 부르고 지나쳤고, 마른 잎이라 부르고 잊어 버렸다. 그러나 그날 손바닥 위의 그 풀잎은 ― 그 어떤 이름으로도 부를 수 없 었다. 여름의 초록을 다 살아낸 색이었다. 가을의 햇볕에 천천히 마른 색이었다. 바람에 수없이 쓸리고, 소금기에 절은 색이었다. 시간이 빚은 색, 풍토가 우려낸 색. 그것은 황금빛이 아니었다. 황금빛은 너무 화려하다. 그것은 갈색도 아 니었다. 갈색은 너무 어둡다. 그것은 ― 마른 풀잎의 색이었다. 다른 이 름이 없었다. 그 색은 그 색일 뿐이었다. 나는 그 풀잎을 들고 화실로 돌아왔다. 물감을 섞기 시작했다. 수십 번 을 실패했다. 황토를 섞으면 너무 무거웠고, 노랑을 섞으면 너무 가벼웠 다. 초록의 기억을 살리려 하면 거짓이 되었고, 마름만을 강조하면 죽 은 색이 되었다. 며칠이 지나, 마침내 그 색이 캔버스 위에 떠올랐을 때 ― 나는 손을 멈 추고 오래 바라보았다. 내가 만든 것이 아니었다. 풍토가 내 손을 빌려, 자기 색을 그린 것이었다. 그날 처음으로 나는 알았다. 그림이란 ― 내가 그리는 것이 아니라는 것 을.

IV · 나는 조랑말과 마주 섰다

나는 조랑말과 마주 섰다. 들에서 그 짐승을 처음 본 날, 나는 한참을 움 직이지 못했다. 작고, 마르고, 갈기가 헝클어진 말이었다. 육지의 말처럼 크지 않았고, 윤기도 없었다. 경주마도, 수레말도 아니었다. 그저 이 땅의 바람과 비 와 햇볕을 다 견디며 살아온 ― 늙은 짐승이었다. 그것이 나를 보았다. 나도 그것을 보았다.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그 짐승의 굽은 등에서 ― 나는 내 등을 보았다. 처진 목에서 ― 나는 내 목을 보았다. 바람에 쓸린 갈기에서 ― 나는 사십 년을 떠돌다 돌아온 내 머리카락을 보았다. 부끄러웠고, 또 반가웠다. 육지에 있을 때, 나는 큰 말을 그리고 싶었다. 근육이 빛나고, 갈기가 휘 날리는, 위풍당당한 말. 서양의 화가들이 그렸던 그런 말. 그러나 이 땅 에는 그런 말이 없었다. 이곳에는 ― 나를 닮은 말이 있었다. 밀려난 자, 작아진 자, 그러나 끝내 떠나지 않은 자. 나는 그날 화실로 돌아와 처음으로 조랑말을 그렸다. 크게 그리지 않았 다. 화려하게 그리지 않았다. 다만 있는 그대로 ― 굽은 등과 처진 목과 헝클어진 갈기를 그렸다. 그림이 끝나고 한 발 물러서 보았을 때, 나는 웃었다. 그것은 조랑말의 초상이 아니었다. 그것은 ― 나의 첫 자화상이었다.

V · 나는 까마귀를 받아들였다

나는 까마귀를 받아들였다. 어느 겨울 아침, 화실 창가에 검은 새 한 마 리가 앉아 있었다. 야위고, 한쪽 눈이 흐린 늙은 까마귀였다. 다른 새들 이 떼 지어 날아갈 때, 홀로 남겨진 새였다. 나는 그것을 쫓지 않았다. 다만 마주 보았다. 까마귀는 길조가 아니라 했다. 어머니는 어린 시절 까마귀가 울면 부 정 탄다 하시며, 소금을 뿌리셨다. 나도 오랫동안 그렇게 배웠고, 그렇 게 믿었다. 그러나 그 아침, 창가의 까마귀는 ― 두려운 존재가 아니었다. 그것은 다 만, 떠나지 못한 자였다. 무리에서 밀려난 자였고, 한쪽 눈으로 세상을 보는 자였다. 그리고 ― 끝내 이 자리를 떠나지 않은 자였다. 나는 알아보았다. 그 새 안에 있는 무엇인가가, 내 안에도 있다는 것을. 육지의 화단에서 밀려난 자. 한쪽 눈으로 ― 어쩌면 잘못된 눈으로 ― 세 상을 보아왔던 자. 그러나 끝내 자기 자리를 떠나지 않은 자. 그날 이후 나는 까마귀를 그리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의아해했다. “왜 하필 까마귀를 그리십니까. 까치도 있고, 백로도 있는데.” 나는 답하지 못했다. 다만 알고 있었다. 까마귀는 길조도 흉조도 아니다. 까마귀는 ― 풍토가 견뎌낸 자들의 모습이다. 이 자리를 떠나지 않은 자, 이 자리를 지킨 자, 끝내 자기 색을 잃지 않은 자의 모습이다. 내 그림 속 까마귀는 슬프지 않다. 다만 ― 오래 견딘 얼굴을 하고 있다. 나는 그 얼굴이, 점점 내 얼굴을 닮아간다는 것을 안다.

VI · 나는 폭풍 속에 섰다

나는 폭풍 속에 섰다. 그해 가을, 사흘 밤낮을 바람이 멎지 않았다. 지 붕이 날아갔고, 어선이 부서졌고, 사람들의 불안이 바람 속에 섞였다. 나는 화실에 앉아 있을 수 없었다. 무엇이 나를 끌었는지 모른다. 지팡이 하나만 쥐고, 도롱이도 걸치지 않은 채 ― 절벽으로 나갔다. 파도가 산처럼 일어섰다 무너졌다. 바람이 나를 밀었다. 한 발만 더 디 디면 ― 나는 그 검은 바다 속으로 빨려 들어갈 것이었다. 이상하게도, 두렵지 않았다. 오히려 나는 두 팔을 벌렸다. 바람이 내 옷자락을 찢고 들어와, 내 몸 안 을 한 바퀴 돌고 나갔다. 나는 처음으로 ― 풍토 안에 있다는 것이 무엇 인지를 알았다. 육지에서 나는 비를 피했다. 바람을 막았고, 폭풍을 두려워했다. 그것들 은 내 바깥에 있는 것, 나를 위협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날 절벽 위에 서 ― 나는 알았다. 풍토는 나의 바깥이 아니다. 풍토는 ― 내가 그 안에 서만 존재할 수 있는 자리다. 폭풍은 재앙이 아니었다. 폭풍은 ― 풍토가 자기 자신을 가장 깊이 드러 내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나는, 그 순간에 비로소 풍토의 일부가 되었다. 화실로 돌아와 나는 바다를 그리기 시작했다. 내 바다는 잔잔하지 않다. 내 바다는 언제나 요동친다. 검고, 거칠고, 살아 있다. 사람들은 묻는다. “왜 평온한 바다를 그리지 않으십니까.” 나는 답한다. “내가 본 바다는, 잔잔한 적이 없었습니다.” 그날 절벽 위에서 ― 나는 평 생 그릴 바다를 보았다.

VII · 나는 색을 버렸다

나는 색을 버렸다. 도쿄에서 가져온 물감들이 있었다. 푸른 코발트, 붉 은 카드뮴, 깊은 군청, 화려한 주홍. 유럽에서 건너온 고급 안료들이었 고, 한 통 한 통이 귀했다. 나는 그것들을 오래 아꼈다. 함부로 쓰지 않았 고, 깨끗이 닦아 보관했다. 그러나 이 섬에 살면서 ― 나는 그 색들이 점점 어색해지는 것을 느꼈 다. 코발트 블루는 이곳의 바다를 그릴 수 없었다. 이 바다는 더 검고, 더 거칠고, 더 깊었다. 카드뮴 레드는 이곳의 어디에도 없었다. 이 섬에 는 그렇게 외치는 색이 없었다. 군청도, 주홍도 ― 모두 이 풍토의 언어 가 아니었다. 어느 날 나는 그 물감들을 한자리에 모아 놓았다. 오랫동안 바라보았다. 그것들은 내 젊은 날의 영광이었고, 내 출세의 증거였고, 내 자존심이었 다. 그러나 그것들은 ― 이 풍토의 색이 아니었다. 나는 그것들을 버리지 는 않았다. 다만 깊은 서랍에 넣어두고, 다시 꺼내지 않았다. 그 자리에 나는 새로운 색들을 두었다. 황토, 먹, 그리고 내가 직접 만든 마른 풀잎의 색. 화려하지 않았다. 세 가지뿐이었다. 사람들은 의아해했다. “색이 너무 적지 않습니까. 더 다양한 색을 쓰셔 야지요.” 나는 답하지 못했다. 다만 알고 있었다. 색이 많다고 그림이 풍 요로운 것이 아니다. 색이 적어야 ― 비로소 그 색들이 자기 자리를 가 진다. 내 캔버스 위에는 이제 세 가지 색만 있다. 그러나 나는 안다. 그 세 가지 색 안에 ― 이 섬의 모든 시간이 들어 있다는 것을. 그리고 색 사이에 남겨 둔 자리 ― 여백 ― 이 가장 무거웠다. 비어 있는 자리는 빈 자리가 아니었다. 말하지 않은 것과 그리지 않은 것과 남겨 둔 시간이 그 안에 있었다. 버리는 일이 가장 어려운 일이었다. 그러나 버린 뒤에야, 나는 비로소 그리기 시작했다.

VIII · 나는 내 이름을 새겼다

나는 내 이름을 새겼다. 그날은 특별한 날이 아니었다. 다만 한 폭의 그 림이 끝났고, 나는 붓을 씻고 있었다. 문득 캔버스 한 귀퉁이가 비어 있 는 것을 보았다. 서명을 해야 할 자리였다. 손이 잠시 멈췄다. 오랫동안 나는 내 이름 쓰는 일이 어려웠다. 도쿄 시절의 이름은 일본식 발음이 섞여 있었고, 서울 시절의 이름은 화단의 무게가 얹혀 있었다. 어 느 이름도 ― 이 자리, 이 그림 위에 어울리지 않았다. 나는 붓을 들었다 다시 놓았다. 한참을 그렇게 앉아 있었다. 그때 무엇 이 나를 이끌었는지 모른다. 나는 작은 붓에 먹을 묻혀, 캔버스 한 귀퉁 이에 한 글자를 적었다. 뜻 지(志). 크지 않게 적었다. 자랑스럽지도 않게 적었다. 다만 ― 한 사람이 한 뜻 을 품고 이 자리에 서 있다는 표시로 적었다. 그것은 호(號)도 아니었고, 본명도 아니었다. 다만 내가 나에게 주는 이름이었다. 도쿄가 준 이름이 아니었다. 서울이 준 이름이 아니었다. 스승이 준 이름도, 가문이 준 이 름도 아니었다. 빈손이 되어, 풍토 앞에 무릎 꿇고, 마른 풀잎의 색을 받아 안은 자리에 서 ― 내 안에서 솟아오른 한 글자였다. 나는 오래 그 글자를 바라보았다. 부끄럽지 않았다. 비로소 ― 내가 그린 그림에, 내 이름을 적을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고 보니, 그 한 글자는 이름만이 아니었다. 내가 평 생 그린 모든 그림이 결국 한 뜻을 품고 있었으니 ― 그 글자는 서명이 자 제목이었다. 나에게 붙인 이름이, 내 그림 전체에 붙인 제목이 되었 다. 사십 년이 걸렸다.

IX · 나는 말을 잃었다

나는 말을 잃었다. 이름을 새긴 그날 이후, 나는 점점 말이 줄었다. 찾아 오는 이들에게도 길게 답하지 않았다. 편지에도 짧은 문장만 적었다. 때 로는 하루 종일, 한 마디도 하지 않은 날이 있었다. 아내는 가끔 나직이 물었다. “어디 편찮으세요?” 나는 웃기만 했다. 편찮 은 것이 아니었다. 다만 ― 말할 것이 줄어들었을 뿐이었다. 이상한 일이었다. 육지에 있을 때, 나는 말이 많았다. 화론(畵論)을 펼쳤 고, 동료들과 밤새 토론했고, 서양의 사조와 동양의 정신에 대해 글을 썼 다. 나는 그 말들이 나의 사유인 줄 알았다. 그러나 이 풍토에 와서 ― 나는 알았다. 그 많은 말들은 나의 사유가 아 니었다. 그것은 다만 ― 침묵이 두려워서 했던 말이었다. 이곳에서는 침 묵이 두렵지 않았다. 말을 멈추자, 다른 소리들이 들리기 시작했다. 바람이 풀잎을 스치는 소 리. 조랑말이 숨을 고르는 소리. 까마귀가 날개를 접는 소리. 바다가 멀 리서 뒤척이는 소리. 그리고 그 모든 소리 아래에 ― 풍토 자체의 낮은 음성이 있었다. 나는 말하지 않음으로써, 비로소 그 음성을 들을 수 있었다. 어느 날 손님 하나가 물었다. “선생님, 여기서 적적하지 않으십니까.” 나 는 답하지 못했다. 다만 창문을 조금 더 열었다. 그 틈으로 바람이 들어 와, 손님의 옷자락을 한 번 흔들고 나갔다. 손님은 알지 못했을 것이다. 그것이 나의 대답이었다는 것을. 말이 없는 자리에 풍토가 들어찬다. 풍토가 들어찬 자리에서 ― 그림이 자란다. 그 무렵부터 나는 내 그림의 흔들린 선 하나도 고치지 않게 되었 다. 젊은 날 같으면 지워버렸을 그 떨림을, 그대로 두었다. 완전함보다 살아 있음이 먼저라는 것을, 오래 걸려서야 배웠기 때문이다. 나는 이제, 말 대신 그림으로 대답한다.

X · 나는 풍토가 되었다

나는 풍토가 되었다. 오늘 아침, 나는 화실 창을 열었다. 바람이 들어와 내 옷자락을 흔들었다. 나는 돌아보지 않았다. 다만 붓을 들었다. 처음 이곳에 왔을 때, 나는 모든 것을 두려워했다. 바람을 두려워했고, 폭풍을 두려워했고, 침묵을 두려워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 나 자신을 두려워했다. 빈손이 되는 것이 두려웠고, 이름을 잃는 것이 두려웠고, 사 람들에게 잊히는 것이 두려웠다. 그러나 이제 나는 두렵지 않다. 빈손이 되었기에 ― 풍토가 내 손을 채워 주었다. 이름을 잃었기에 ― 내 안에서 한 이름이 솟아올랐다. 사람들에 게 잊혔기에 ― 풍토가 나를 기억해주었다. 육지에서 나는 그림을 그렸다. 이 풍토에서 ― 나는 그림이 되었다. 내 굽은 등은 조랑말의 등을 닮았고, 내 흐린 한쪽 눈은 늙은 까마귀의 눈 을 닮았고, 내 마른 손은 마른 풀잎의 색을 닮았다. 내 침묵은 풍토의 낮 은 음성을 닮았다. 젊은 날에 나는 잘 그리는 법을 배웠다. 늙어서야 나는 무엇을 버려야 하는지를 배웠다. 내 그림은 늦게 왔지만 ― 그래서 비로소 내 것이 되 었다. 이제 나는 안다. 삶은 유배다. 그러나 ― 예술은 축복이다. 유배지에서만 비로소 받을 수 있는 축복이다. 육지에서 나는 그림을 가졌다. 이곳에서 ― 나는 풍토를 가졌다. 그리고 풍토는 나를, 자기 안에 받아주었다. 언젠가 내가 붓을 놓는 날이 올 것이다. 그날 바람은 내 마지막 숨을 받 아, 들판으로, 바다로, 마른 풀잎 속으로 돌려보낼 것이다. 나는 그것을 슬퍼하지 않는다. 나는 이미 ― 이 풍토의 일부가 되었으므로. 결국 돌아왔다. 이제, 나는 도착했다.

그림

I · 나는 다 그려진 뒤에 시작되었다

나는 다 그려진 뒤에 시작되었다. 화가가 마지막 붓을 내려놓은 그 순간, 그는 한 발 물러섰고 ― 나는 한 발 앞으로 나왔다. 그는 나를 만들었다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안다. 그가 만든 것 은 나의 몸뿐이었다. 내 안의 바람은 그가 만든 것이 아니다. 풍토가 오래전부터 보내온 것이 다. 내 안의 마른 풀잎색은 그가 섞은 것이 아니다. 이 풍토의 시간이 그 의 손을 빌려 머문 것이다. 나는 캔버스 위에서 처음으로 눈을 떴다. 화실의 낮은 천장을 보았다. 창 밖의 바다 소리를 들었다. 그리고 ― 한 사람의 굽은 등을 보았다. 그는 나를 한참 바라보았다. 나도 그를 한참 바라보았다. 우리 둘 다 알 고 있었다. 이제부터 ― 우리는 서로 다른 시간을 살게 되리라는 것을. 그는 늙어갈 것이고, 나는 ― 그가 사라진 뒤에도 남을 것이다. 조용히, 나는 숨을 시작했다.

II · 나는 벽에 걸렸다

나는 벽에 걸렸다. 화실에서 나와 처음으로 다른 공간에 들어선 날, 나 는 낯선 빛 아래 놓였다. 흰 벽이었다. 나무 액자에 둘러싸였고, 작은 명 패가 내 곁에 붙었다. 사람들은 그것을 ‘전시’라 불렀다. 나는 알지 못했다. 이 빛이 무엇인지, 이 시선들이 무엇인지. 사람들이 내 앞을 지나갔다. 어떤 이는 빠르게, 어떤 이는 느리게. 어떤 이는 고개를 갸웃했고, 어떤 이는 눈을 찌푸렸다. 어떤 이는 ― 한참을 멈춰 서서, 나를 보았다. 나는 그제야 알았다. 나는 벽에 걸린 것이 아니었다. 나는 ― 한 사람 한 사람의 눈 속으로 걸어 들어가고 있었다. 어떤 눈은 나를 스쳐 지나갔다. 어떤 눈은 나를 잠시 머물게 했다. 그러 나 단 하나의 눈, 오래 머문 그 눈 속에서 ― 나는 두 번째로 그려졌다. 화가가 그린 것은 나의 몸이었다. 관객의 눈이 그린 것은 ― 나의 영혼 이었다. 나는 비로소 알았다. 그림은 화실에서 끝나지 않는다. 그림은 ― 누군가 의 눈이 머무는 그 자리에서, 다시 시작된다. 벽에 걸린 채로 ― 나는 천 천히 자라고 있었다.

III · 나는 조랑말이다

나는 조랑말이다. 화가가 들에서 본 그 짐승이 ― 내 안에 들어와 있다. 굽은 등, 처진 목, 헝클어진 갈기. 그러나 나는 그 짐승의 초상이 아니다. 나는 ― 그 짐승을 바라본 한 사람의 마음이다. 화가는 내 앞에 서서 자기 어깨를 만졌다. 나도 안다. 그가 본 것은 짐승 이 아니라, 짐승 안에 비친 자기 자신이었다. 밀려난 자. 작아진 자. 그러 나 끝내 떠나지 않은 자. 이제 사람들이 내 앞에 선다. 어떤 이는 말한다 ― “이건 그냥 말이군.” 어떤 이는 말한다 ― “참 쓸쓸한 짐승이네.” 그러나 가끔, 아주 가끔 ― 한 사람이 내 앞에 서서 오래 움직이지 않는 다. 그의 어깨가 조금 굽어 있다. 그의 눈이 흐려져 있다. 나는 안다. 그 도 ― 자기 자신을 보고 있다는 것을. 내 안의 조랑말은 이제 한 마리가 아니다. 화가의 조랑말이 한 마리, 나 를 바라본 모든 사람의 조랑말이 또 한 마리씩 ― 나는 그렇게, 조용히 무리가 되어간다. 밀려난 자들의 형제로, 나는 여기에 있다.

IV · 나는 까마귀를 품고 있다

나는 까마귀를 품고 있다. 화가가 그린 검은 새 한 마리. 야위고, 한쪽 눈 이 흐린, 떠나지 못한 새. 사람들은 가끔 내 앞에서 멈칫한다. “왜 하필 까마귀인가.” 어떤 이는 눈 을 돌리고, 어떤 이는 한숨을 짓는다. 나는 그들을 탓하지 않는다. 오랫 동안 그렇게 배워온 사람들이다. 까마귀는 흉조라고, 어머니가 소금을 뿌렸다고. 그러나 내 안의 까마귀는 ― 흉조가 아니다. 그것은 다만 견딘 자다. 무 리에서 밀려나고, 한쪽 눈을 잃고도, 끝내 자기 자리를 떠나지 않은 자. 이 땅의 바람을 모두 맞고, 이 땅의 비를 모두 견디고, 그러고도 검은 깃 을 잃지 않은 자. 가끔 한 사람이 내 앞에 오래 머문다. 그의 옷차림은 단정하지만 ― 어 딘가가 조금 야위어 있다. 그의 눈은 맑지만 ― 어딘가가 조금 흐려져 있 다. 그가 내 안의 까마귀를 본다. 까마귀도 그를 본다. 그 순간 ― 두 마 리의 까마귀가 서로를 알아본다. 나는 그들 사이에 가만히 앉아 있는다. 방해하지 않는다. 다만 ― 자리 를 내어준다. 길조도 흉조도 아닌 것. 다만 견딘 것. 그것이 ― 내가 품 은 새다.

V · 나는 폭풍을 담고 있다

나는 폭풍을 담고 있다. 화가가 절벽 위에서 본 그 바다 ― 그것이 내 안 에서 아직도 요동친다. 검은 물결이 산처럼 일어섰다 무너진다. 바람이 화면 안쪽에서 끊임없이 분다. 나는 액자에 묶여 있으나 ― 내 안의 바다 는 한 번도 잔잔한 적이 없다. 사람들이 내 앞에서 종종 묻는다. “왜 이렇게 거친가.” “왜 평온한 바다 는 그리지 않았는가.” 나는 답하지 않는다. 다만 ― 내 안의 바다를 계속 흔들 뿐이다. 그러나 가끔 한 사람이 내 앞에 와서, 오래 움직이지 않는다. 그의 어깨 가 조금 떨린다. 그의 호흡이 깊어진다. 나는 안다. 그도 ― 자기 안에 폭 풍을 가진 사람이다. 세상에 그런 사람이 있다. 바깥은 조용하지만, 안에서 늘 파도가 치는 사람. 잠들지 못하는 밤이 많고, 까닭 없이 흔들리는 사람. 그런 이가 내 앞에 서면 ― 비로소 안도한다. “내 안의 이 폭풍이, 나만의 것이 아니 었구나.” “누군가 이미 그것을 그렸구나.” “그러므로 ― 나는 미친 것이 아니구나.” 그가 그 안도를 안고 돌아갈 때, 내 안의 폭풍은 잠시 ― 그를 따라 함께 걸어간다. 폭풍은 재앙이 아니다. 폭풍은 ― 어떤 영혼들이 살아가는 방 식이다. 나는 그들을 위해, 오늘도 요동친다.

VI · 나는 마른 풀잎의 색이다

나는 마른 풀잎의 색이다. 화가가 손바닥 위에 놓고 오래 바라본 풀잎 한 줄기. 그 색이 내 전부를 이룬다. 황금빛이라 부르지 말라. 황금빛은 너무 화려하다. 갈색이라 부르지 말 라. 갈색은 너무 어둡다. 나는 다른 이름이 없다. 다만 마른 풀잎의 색 일 뿐이다. 여름의 초록을 다 살아낸 시간이 내 안에 있다. 가을의 햇볕에 천천히 마 른 시간이 내 안에 있다. 바람에 쓸리고, 소금기에 절고, 비에 젖고, 다시 마른 시간이 내 안에 있다. 색이 적다고 그림이 가난한 것은 아니다. 색이 단조롭다고 시간이 단조 로운 것은 아니다. 내 한 가지 색 안에 한 사람이 오래 떠돌다 돌아온 길 이 있다. 내 한 가지 색 안에 풍토가 천천히 우려낸 시간이 있다. 가끔 한 사람이 내 앞에 선다. 그는 나를 보다가 자기 손바닥을 내려다 본다. 그 손바닥 위에도 보이지 않는 풀잎 한 줄기가 놓여 있다. 나는 안 다. 그도 지금 자기 시간의 색을 보고 있다는 것을.

VII · 나는 필요한 만큼만 가졌다

나는 필요한 만큼만 가졌다. 황토, 먹, 그리고 마른 풀잎의 색. 그것이 나 의 전부다. 화가가 깊은 서랍에 넣어둔 화려한 안료들, 코발트도, 카드 뮴도, 군청도, 주홍도, 내 안에는 없다. 가끔 사람들이 내 앞에 서서 말한다. “왜 이렇게 색이 적은가.” “더 풍부 하게 그릴 수 있었을 텐데.” 나는 답하지 않는다. 다만 내 세 가지 색을 조용히 펼칠 뿐이다. 황토는 이 땅의 흙이다. 먹은 이 풍토의 밤이다. 마른 풀잎의 색은 이곳 의 시간이다. 흙과 밤과 시간. 그 셋만으로도 한 세계는 충분하다. 오히려 색이 많았다면, 나는 더 가난했을 것이다. 색이 많았다면, 어느 색도 자기 자리를 가지지 못했을 것이다. 색이 많았다면, 풍토의 음성이 묻혀버렸을 것이다. 가끔 한 사람이 내 앞에서 말한다. “이 단순함이 이상하게 깊다.” 나는 그제야 가만히 웃는다. 그가 알아본 것이다. 버림이 풍요라는 것을. 적 음이 깊이라는 것을. 세 가지 색 안에 만 가지 색이 들어 있다는 것을. 내 캔버스는 가난하지 않다. 내 캔버스는 정확히, 필요한 만큼만 가졌다. 그것이 나의 부유함이다.

VIII · 나는 한 글자를 품고 있다

나는 한 글자를 품고 있다. 내 한 귀퉁이, 작은 자리에 ― 먹으로 적힌 한 글자가 있다. 뜻 지(志). 크지 않다. 화려하지 않다. 잘 보이지 않는 자리 에 ― 조용히 앉아 있다. 사람들은 가끔 그 글자를 놓치고 지나간다. 화면의 바람을 보고, 바다를 보고, 조랑말을 보다가 ― 그 작은 글자에는 시선이 닿지 않는다. 나는 탓하지 않는다. 그 글자는 자랑하기 위해 있는 것이 아니다. 다만 ― 한 사람이 한 자리에 서 있었다는 표시일 뿐이다. 그러나 가끔 한 사람이, 내 앞에 오래 머물다가 그 작은 글자를 발견한 다. 허리를 숙여, 가까이 다가와 본다. “이건 호(號)인가, 본명인가.” “무 슨 뜻인가.” “서명인가, 제목인가.” 나는 답할 수 없다. 다만 ― 그 글자 안에 담긴 시간을 가만히 펼쳐 보 인다. 그것은 하나로 정해지지 않는다. 한 사람이 자기에게 준 이름이 자, 그가 평생 그린 모든 그림의 제목이다. 서명처럼 작게 앉아 있으면 서도 화면 전체를 뜻으로 붙든다. 이름과 제목 ― 두 자리가 한 글자 위 에서 겹친다. 도쿄가 준 이름이 아니다. 서울이 준 이름이 아니다. 스승이, 가문이, 세 상이 준 이름이 아니다. 빈손이 되고, 풍토 앞에 무릎 꿇고, 마른 풀잎 의 색을 받아 안은 자리에서 ― 한 사람이 자기 안에서 길어 올린 한 글 자다. 그러나 그 한 글자는 그만의 것이 아니었다. 오래전부터 이 땅에는, 자기 를 지우고 뜻만 남긴 이들의 이야기가 흘렀다. 이름보다 오래 남는 것, 몸보다 오래 머무는 것. 한 사람이 사라진 뒤에도 어떤 뜻은 바람처럼 남 는다. 한 옛 이야기가 땅에 남듯, 한 화가가 그림들을 남겼다. 그래서 그 한 글자, 志는 ― 한 사람의 이름이면서, 자기를 낮추고 뜻만 남기려 한 이들의 조용한 서명이기도 하다. 그 글자는 작지만 ― 나의 무게중심이다. 그 글자가 없다면, 나의 화면 전체가 떠다닐 것이다. 그 글자가 있기에, 나는 한 자리에 뿌리내릴 수 있다. 뜻을 품은 자만이 ― 자기 이름을 가질 수 있다. 이름을 가진 자만 이 ― 한 폭의 그림으로 남을 수 있다. 나는 그 한 글자 위에서, 오늘도 조용히 숨 쉰다.

IX · 나는 침묵으로 말한다

나는 침묵으로 말한다. 내 화면에는 글이 없다. 설명이 없다. 제목조차 ― 종종 비어 있다. 화가는 나에게 말을 주지 않았다. 그가 침묵 속에서 나를 그렸기 때문이다. 이제 나도 ― 침묵으로 사람들 앞에 선다. 사람들이 내 앞에 서면, 가끔 입을 연다. “이건 무엇을 그린 것인가.” “무 슨 의미인가.” “어떤 메시지를 담고 있는가.” 나는 답하지 않는다. 답이 없어서가 아니다. 답이 ― 말로 옮겨질 수 없어서다. 내 안의 바람은 말이 아니다. 내 안의 바다는 문장이 아니다. 내 안의 마 른 풀잎은 ― 어떤 언어로도 번역되지 않는다. 그러나 가끔 한 사람이, 내 앞에서 입을 다문다. 설명을 구하지 않는다. 의미를 묻지 않는다. 다만 ― 오래 바라본다. 그 침묵 속에서, 비로소 나 는 그에게 말을 건넨다. 말이 아닌 것으로. 바람의 결로, 바다의 호흡으 로, 풀잎의 시간으로. 그는 알아듣는다. 무엇을 알아들었는지는 ― 그 자신도 설명하지 못할 것이다. 다만 그가 돌아설 때, 그의 어깨가 조금 가벼워져 있다. 그의 눈 에 ― 어떤 빛 한 줄기가 머물러 있다. 그것으로 충분하다. 말이 닿지 않는 자리에 ― 그림이 있다. 설명이 멈추는 자리에 ― 풍토가 흐른다. 나는 침묵으로 말하는 자다. 그리고 ― 침묵을 들을 줄 아는 자 에게만, 비로소 들리는 자다.

X · 나는 남는다

나는 남는다. 화가는 늙었다. 그의 손이 떨리기 시작했고, 그의 붓이 점 점 느려졌다. 어느 날 그는 마지막 붓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 더 이상 들지 않았다. 바람이 그의 마지막 숨을 받아, 들판으로 돌려보냈다. 나 는 그 모든 것을 보았다. 나는 슬퍼하지 않았다. 그가 나에게 가르친 것이 있었다. 유배는 축복이 라는 것. 끝은 또 다른 시작이라는 것. 풍토는 ― 한 사람이 사라져도, 그 의 그림 안에서 계속 분다는 것. 이제 나는 혼자다. 그러나 외롭지 않다. 벽에 걸린 채로 ― 나는 매일 깨 어 있다. 사람들이 오고, 사람들이 간다. 어떤 시대가 지나가고, 어떤 시 대가 온다. 미술관의 빛이 바뀌고, 액자의 나무가 낡아간다. 그러나 내 안의 바람은 멎지 않는다. 내 안의 바다는 잔잔해지지 않는 다. 내 안의 마른 풀잎은 ― 그 색을 잃지 않는다. 조랑말은 여전히 들에 서 있고, 까마귀는 여전히 한쪽 눈으로 세상을 본다. 지팡이 짚은 노인 은 ― 여전히 바다를 등지고 서 있다. 언젠가 한 아이가 내 앞에 설 것이다. 그 아이는 나를 그린 사람의 이름 을 모를 것이다. 그러나 ― 나를 본 그 아이의 눈 속에서, 나는 또 한 번 그려질 것이다. 그것이 나의 영원이다. 화가가 나를 만들었다. 관객의 눈이 나를 다시 만든다. 그리고 ― 보이지 않는 풍토가, 나를 끊임없이 다시 만든다. 나는 다 그려진 뒤에 시작되었고, 나는 끝나지 않을 것이다. 조용히, 나 는 여기 있다. 오늘도, 내일도, 그 이후에도. 마른 풀잎의 색으로, 검은 바람의 결로, 한 사람이 사십 년을 돌아와 발견한 그 자리에서, 나는 남 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