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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 · 비평

기당미술관 이야기

The Gidang Museum
The Gidang Museum

1. 1987년 7월 1일

서귀포의 언덕에 미술관이 문을 열었다.
이름은 기당미술관(奇堂美術館).

건물을 지어 서귀포시에 기증한 사람은 강구범(奇堂 姜衢範)이다.
재일교포 실업가였다. 제주에서 태어나 일본으로 건너가 사업을 일으켰다.

당시 서울에도 시립미술관이 없었다.
그래서 이곳이 국내 최초의 시립미술관이 되었다.

문화시설 하나 없던 섬에,
가장 먼저 미술관이 섰다.


2. 두 사람

강구범과 변시지는 먼 인척 사이다.

두 사람이 다시 만난 것은 1940년대 말 일본에서였다.
전쟁이 끝난 오사카와 도쿄. 제주에서 온 사람이라는 사실 하나가 두 사람을 묶었다.

변시지는 그때 스물 몇 살의 화가 지망생이었고,
강구범은 그를 지켜보는 손위 사람이었다.

1949년, 변시지가 도쿄 시세이도 갤러리에서 첫 개인전을 열었을 때
강구범이 한 점을 샀다. 그 그림을 평생 집에 걸어 두었다고 전해진다. <sup>[검증 중]</sup>

가난한 화가에게 그림 한 점이 팔린다는 것은 돈의 문제가 아니다.
누군가 자신을 믿고 있다는 뜻이다.


3. 제주로 돌아온 뒤

1975년, 변시지는 서울을 떠나 제주에 정착한다.

그가 서울에서 가르쳤던 제주 출신 학생들 가운데는
고향을 묻는 말에 말끝을 흐리는 아이들이 있었다.
아무것도 없는 섬에서 왔다는 이유로.

그 기억이 그에게 하나의 다짐을 남겼다.
제주에 제대로 된 미술관이 있어야 한다는 것.

미술관은 그림을 거는 곳이 아니다.
아이들이 부끄러워하지 않게 되는 곳이다.


4. 약속

강구범이 사업으로 자리를 잡은 뒤, 고향에 무언가를 돌려주고자 했을 때
변시지가 미술관을 말했다.

강구범은 자기 아호(雅號)를 딴 건물을 짓고,
완공한 채로 서귀포시에 넘겼다.

1987년, 개관.

미술관에는 변시지의 작품이 걸렸다.
지금도 걸려 있다.


5. 남는 것

한 사람은 돈을 벌었고, 한 사람은 그림을 그렸다.
서로 다른 길이었다.

그러나 둘 다 같은 섬에서 태어났고,
둘 다 그 섬을 떠나 살았고,
둘 다 돌아왔다.

돌아온 자리에 미술관이 하나 남았다.

바람은 여전히 그 언덕을 지나간다.


자료에 관하여

본 아카이브는 확인된 사실만을 본문에 싣는다.

이 이야기와 관련해 널리 유포된 서술 가운데,
아래 항목은 1차 자료로 확인되지 않았으므로 본문에서 제외하거나 유보 표기했다.

  • - 두 사람의 구체적 친족 관계
  • - 강구범의 일본 내 납세 순위
  • - 1950년 일본 미술단체 연합전에서의 일화
  • - "40년 전의 약속"이라는 표현의 근거
  • - 두 사람 사이에 오갔다고 전해지는 대화

전해지는 이야기는 전해지는 이야기로서 가치가 있다.
그러나 사료와 구전은 같은 칸에 적을 수 없다.

조사 계획
1. 기당미술관 개관 관련 서귀포시 공문서 및 당시 언론 보도
2. 강구범 관련 재일교포 사회 기록
3. 화백 육성 구술 자료 내 강구범 언급 전수 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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