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시지 아틀라스WORKS · FŪDO · LANGUAGES

Foundation / In the Artist’s Words

제주에 산다 — 화가의 글

화가 변시지 본인이 쓴 산문. 재단 아카이브의 1차 사료.

6여섯 편
124-127도록 면

01 · 도록 124면

제주의 태양, 바다

바다를 소재로 그림을 그릴 때마다 나는 많은 상념에 사로잡히곤 한다. 이러한 상념은 캔버스를 대하면서부터 끊임없는 반복의 연속된 과정으로 나타난다. 작업하는 가운데 나타나는 마음의 움직임은 작품의 구성상의 문제나 작품의 아름다움에 관한 문제, 또는 작품의 세계를 위한 미적 행위라고 할 수 있는 제한된 만족감만은 아니다. 내가 갖고 있는 제주에 대한 애정이 상상력과 어우러져 나타날 때, 그것은 누구나 생각하고 있는 우리의 고향 제주에 대한 사랑과 향수라고 말할 수 있다. 그리고 때로는 내게 있어서 고향이란 무엇인가 자문해 본다. 이해하고 긍정하다가도 부정해 보기도 하고, 지니고 있던 욕망을 버려 보기도 하는 이 같은 심리적 변화의 모든 것이 포함되어 있다. 그러면서 제주의 옛날과 오늘을 비교해 보기도 한다. 나는 이때마다 제주는 제주의 것이라는 생각을 하곤 한다. 제주의 아름다움은 오로지 제주다움에 있는 것이다. 내가 캔버스를 마주하는 것은 이 같은 고장에서의 작업과정에서 미를 발견하고 내 존재를 재확인하는 과정의 하나인지도 모른다.

제주에 가 보면 누구나 다 같이 느낄 수 있으리라 생각하지만, 우선 태양이 가깝게 느껴지며 바다의 파도가 번들번들 비친다. 말하자면 아열대의 풍경이 인상 깊게 다가오며, 식물들은 채도가 높고 선명하다. 바다의 파도 소리는 영원한 생명의 약동인 양 들려온다. 부두에서 수평선을 내다보면 한없는 꿈이 피어오른다. 인간은 영원히 대자연을 극복할 수 없으리라는 것을 새삼스럽게 느낀다. 그 순간 슬픔과 괴로움은 정열적 터치로 쌓아올려져 화폭에 무한한 꿈으로 떠오르다가 꺼지고, 꺼졌다가는 또 떠오른다. 이것은 자기 자신을 찾아 헤매고 있는 나의 정직한 모습이리라. 자연과 나의 꿈을 찾고 있는지도 모른다.

02 · 도록 125면

원시에의 향수

사람은 나이가 들수록 추억에 산다는 말이 있듯이, 어렸을 때의 어렴풋한 기억이지만 나에게 소중한 추억이 되었던 일들이 하나하나 떠오른다. 초가집 위에서 까마귀가 울면 손님이나 소식이 온다는 이야기며, 차례를 지낸 다음 지붕 위에 음식을 뿌려 까마귀가 날아와 먹는 모습들, 서당 갈 때 개천 건너기, 새밭을 지나갈 때 무서운 옛날이야기 때문에 겁이 났던 일, 돼지 새끼와 놀려고 돼지 뒷간에 들어가 목에 줄을 감아 끌어내려다가 돼지가 미처 나오지 못하고 죽자 어이없어 야단치는 일도 잊으시던 부모님의 모습, 그리고 아버지와 외할아버지 댁에 갔다 올 때 안장이 없는 조랑말을 탔다가 엉덩이 살이 벗겨져 약 대신 고양이털을 붙이던 일들. 지금 생각하면 현대 문명의 영향을 받지 않은 자연 속에서 자연에 순응하며 단순한 생활을 했던 때였던 것이다. 요즘과 같이 관광지로서 사람들의 발길이 닿고 개발되어 가는 나의 고장을 볼 때, 조금은 아쉬움 속에 어린 시절을 그리워하게 됨은 그러한 기억 때문이리라.

03 · 도록 126면

환상의 섬, 상징의 바위

여름은 의욕적이면서 평화적인 두 개의 얼굴을 가진 창조의 계절이다. 이때쯤이면 특히 서귀포 일대는 아열대 식물의 경관과 정방폭포의 폭포수 떨어지는 모습, 웅장한 물소리가 조화를 이루어 매우 아름답고 장엄하고 시원하다. 인간의 손때가 묻은 문화경관이 아닌 원시의 자연경관이다. 제주의 아름다움의 본질이 여기에 있다. 여름이 익어갈 때면 산이나 바다를 찾는 사람이 많고, 그때마다 새삼 자연에 대한 고마움을 갖게 마련이지만, 그러나 자연 그대로의 경관이 아닌 이차적인 자연경관인 경우가 많다. 그런 의미에서 제주의 자연이 아직까지 파손되지 않은 것은 매우 다행이다. 해변가의 소박한 초가집은 제주의 풍정을 대표하는 듯하며, 서늘한 고목 그늘 밑에 앉아 대화하는 노인들은 무척 평화롭고 행복해 보인다. 바다의 수평선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무한한 상상과 꿈을 안겨 주며, 먼 곳에서 들려오는 단속적인 파도 소리는 넓고 끝없는 생동감을 느끼게 한다. 추상적인 암초를 다각적인 방향에서 살펴보면, 그것은 하나의 환상이며, 뛰어난 감각의 상징이 된다. 변화무쌍한 굴곡은 신비롭고, 세월의 흐름과 아픔의 사연을 잊게 하는 진실된 무언의 대화를 맛보게 하며, 고행의 상징과 같은 인상을 풍겨 주기도 한다. 제주의 미는 자연미이다. 자연미는 인간에게 스스로를 생각케 해준다. 춘하추동을 보고 느끼는 것에 변화가 많듯이, 화폭의 표현도 다기다양하다.

04 · 도록 125-126면

제주의 향토 예술

세월의 흐름에 따라 나의 주변은 항상 변모해 가는 것을 느낀다. 그럴 때마다 기억 속에 남아 있는 어린 시절의 고향을 혼자 찾아간다. 예나 지금이나 도태되지 않은 곳을 찾아다니며 그리다 보니, 굵은 줄로 얽은 초가지붕, 폭풍과 태풍으로 쓰러질 듯한 바닷가 주변의 초가와 무너질 듯한 돌담, 조랑말, 돌담 위에 앉아 있는 까마귀들이 내가 즐겨 그리게 된 소재가 된 것 같다. 이들은 아직도 우리 고장의 옛 모습 그대로 살아있는 사료로서 존재하고 있다고 생각되며, 많은 전설의 고향인 이곳 제주는 다른 고장에서 느낄 수 없었던 새로운 토속적 아름다움을 느끼게 해준다. 이것이 향토예술의 특색으로서, 제주 고유의 향토미의 재현은 단순히 하나의 테두리 속에서 묶어서 생각할 수 없는 것이다.

현대화해 가는 커다란 도시가 아니라, 여성적인 곡선의 한라산, 바닷가 주변의 검은 바윗돌, 심한 바람을 이겨 온 두꺼운 새와지붕, 풀을 뜯는 조랑말 등 다른 고장에서 볼 수 없는 농촌의 소박한 풍토 속의 정은 언제나 나의 마음을 이끈다. 내가 이 섬에 태어난 때는 현대 문명의 영향을 받지 않았던 순수한 자연 그대로였다. 말하자면 현대의 미의식 이전에 제주도가 갖고 있는 섬 그 자체의 아름다움을 느끼는 미의식 속에서 생활하고 있을 때였다. 요즘 제주 고유의 아름다움이 잊혀 가고 있는 것이 안타깝지만, 문화의 발전은 누구나가 원하는 것이고, 발전하면 할수록 도민들의 생활이 향상되는 것이니, 그것을 위해서 누구나가 노력하고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문화란 원래 다른 지역의 것을 받아들이는 데에서 발전하는 것이고 보면, 우리 제주의 고유한 미풍과 아름다움을 제대로 보고 느끼며 현대의 아름다움과 융합시켜야 하지 않을까 하는 것들을 생각해 본다. 나는 매년 여름이 되면, 개천가에서 마음대로 물장구치며, 밤이면 누님한테 옛날 이야기를 들으며 어느 틈에 잠이 들었던 여름밤의 어린 시절로 되돌아간다.

05 · 도록 126면

자연미와 예술 충동

제주의 미는 자연미이다. 자연미는 인간에게 스스로를 생각케 해준다. 춘하추동을 보고 느끼는 것에 변화가 많듯이, 화폭의 표현도 다기 다양하다. 그것은 화가가 자연에 대해 언제나 경탄한 나머지 창작의 의욕을 안겨주는 계기가 된다. 화가는 누구나 순수한 자연으로부터 보고 그리는데 실현되는 예술적 자연에 도달하게 된다. 제주의 매력은 순수하고 단순하며 깊은 원시에의 향수이다. 바다의 약동하는 생명감은 나의 창작활동의 근원이며, 자연의 생이야말로 무한하고 영원한 우리의 꿈이다. 나로서 허용되는 것은 자연 속에서 묵묵히 생활하며 자연에 감동하고 생각하며 조형활동을 하는 것이다.

06 · 도록 126-127면

예술과 풍토

오늘의 현대미술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은 다양하다. 그러나 이러한 다양성도 그 저류에 있어서는 어딘가 공통된 점이 있다. 그것은 인간의 본성에 그 근간을 둔 때문인지도 모른다. 동시에 민족과 시대와 풍토가 다르면 그것을 표현하는 방식도 달라진다. 동양인은 예로부터 자연을 인간과 대립되는 것으로 보지 않고, 자연의 섭리 속에 인간이 놓여 있다고 여겨 왔다. 자연의 흐름을 거스르지 않고 그것에 순응하며, 자연과 인간이 서로 동화되고 융합되어 왔기에, 회화에서도 자연을 주제로 한 표현이 그 특색이라 하겠다.

따라서 그 표현 방식도 서양과는 사뭇 다르다. 자연에 대한 서양의 태도는 이것을 정복하고 이용하는 점에 한층 흥미를 가지고 기울여 온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서양의 자연 정복관과 비교할 때 대단히 큰 차이가 있다. 동양의 예술은 자연 순응에서부터 비롯되므로, 자연에 대하여 무한한 사랑을 느끼며 깊은 감사에 넘치는 마음가짐에서 이루어진 소산인 것이다. 이것은 단순하고 얄팍한 인간의 기분에서만의 독단이 아니라, 우주 섭리에 따른 숭고한 정신의 발로이기도 하다. 서양인은 자연을 의도적으로 인간에게 예속화시켜 놓고 이것을 예술에 나타내려고 하는 경우가 많다. 동양인은 인간을 소재로 삼아서 표현할 경우에도 산수나 화조 등을 동시에 담아 표현한다. 이것이 바로 동양 예술의 특수성이며, 예술 창작의 원천이 서양의 그것과 다르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우리나라의 자연 풍경은 한 폭의 남화 그대로이다. 이 남화에 표현된 자연환경은 같은 동양이면서도 일본 같은 풍토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것으로 한국 특유의 것이라 하겠다. 이 남화가 일본까지 건너갔지만 일본에서는 별로 토착화되지 못하고 말았다. 그것은 일본의 자연환경이 남화에서의 풍경과 거리가 먼 것이었기에 결국 인물화인 우키요에를 비롯한 일본화의 양식이 형성되었다. 그 밖에 우리나라에서 건너간 것이 많으나 풍토가 다르므로 그대로 토착화되지 못하고 자기 나름의 새로운 양식을 이루게 된 것이다. 이처럼 풍토가 다르면 예술의 양식도 달라진다.

원본은 4페이지에 걸친 다단 편집(국·영 컬럼 교차 배치)으로, 텍스트 추출 순서가 실제 독서 순서와 다릅니다. 페이지를 이미지로 렌더링해 문단 순서를 시각적으로 재구성했습니다. 문단 경계의 최종 확인은 실물 도록 대조를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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