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 도록 124면
제주의 태양, 바다
바다를 소재로 그림을 그릴 때마다 나는 많은 상념에 사로잡히곤 한다. 이러한 상념은 캔버스를 대하면서부터 끊임없는 반복의 연속된 과정으로 나타난다. 작업하는 가운데 나타나는 마음의 움직임은 작품의 구성상의 문제나 작품의 아름다움에 관한 문제, 또는 작품의 세계를 위한 미적 행위라고 할 수 있는 제한된 만족감만은 아니다. 내가 갖고 있는 제주에 대한 애정이 상상력과 어우러져 나타날 때, 그것은 누구나 생각하고 있는 우리의 고향 제주에 대한 사랑과 향수라고 말할 수 있다. 그리고 때로는 내게 있어서 고향이란 무엇인가 자문해 본다. 이해하고 긍정하다가도 부정해 보기도 하고, 지니고 있던 욕망을 버려 보기도 하는 이 같은 심리적 변화의 모든 것이 포함되어 있다. 그러면서 제주의 옛날과 오늘을 비교해 보기도 한다. 나는 이때마다 제주는 제주의 것이라는 생각을 하곤 한다. 제주의 아름다움은 오로지 제주다움에 있는 것이다. 내가 캔버스를 마주하는 것은 이 같은 고장에서의 작업과정에서 미를 발견하고 내 존재를 재확인하는 과정의 하나인지도 모른다.
제주에 가 보면 누구나 다 같이 느낄 수 있으리라 생각하지만, 우선 태양이 가깝게 느껴지며 바다의 파도가 번들번들 비친다. 말하자면 아열대의 풍경이 인상 깊게 다가오며, 식물들은 채도가 높고 선명하다. 바다의 파도 소리는 영원한 생명의 약동인 양 들려온다. 부두에서 수평선을 내다보면 한없는 꿈이 피어오른다. 인간은 영원히 대자연을 극복할 수 없으리라는 것을 새삼스럽게 느낀다. 그 순간 슬픔과 괴로움은 정열적 터치로 쌓아올려져 화폭에 무한한 꿈으로 떠오르다가 꺼지고, 꺼졌다가는 또 떠오른다. 이것은 자기 자신을 찾아 헤매고 있는 나의 정직한 모습이리라. 자연과 나의 꿈을 찾고 있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