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생 100주년 · 1926–2026/바깥에서 본 마른 풀잎색 · 100주년 기념판
바깥에서 본 마른 풀잎색 · 100주년 기념판
바람이 그린 황토빛 세계 — 변시지의 풍토 미학
변시지의 작품 앞에 처음 섰을 때, 나는 오랫동안 훈련받아온 인류학자의 시선을 내려놓아야 했다. 이 그림들은 분류되기를 거부했다. 동양도 서양도 아니고, 전통도 아방가르드도 아니었다. 그것은 스스로의 논리로 존재하는 세계였다.
변시지를 이해하는 열쇠는 '풍토(風土, fūdo)'라는 개념에 있다. 일본 철학자 와쓰지 데쓰로(和辻哲郎)가 1935년 제시한 이 개념은, 기후와 지형이 단순한 자연 조건이 아니라 인간의 존재 방식 자체를 빚어내는 힘이라고 설명한다. 변시지는 이 명제를 철학 텍스트가 아닌 캔버스로 증명했다.
마른 풀잎색이 그 중심에 있다. 제주의 화산 토양이 만들어낸 이 색은 붉지도 노랗지도 않다. 생명과 죽음, 역사와 침묵이 수천 년에 걸쳐 침전된 색이다. 변시지는 이 색을 '발견'한 것이 아니라 '귀환'한 것이다. 그 색은 그를 낳은 땅이 언제나 품고 있던 것이었다.
까마귀, 조랑말, 해녀 — 그의 반복되는 모티프들은 상징이 아니다. 제주의 풍토가 빚어낸 존재들이다. 까마귀는 죽음이나 불길함의 상징이 아니라, 이 섬에서 매일 아침 찾아오는 이웃이다. 조랑말은 자유의 알레고리가 아니라, 제주의 바람 속에서 수천 년을 살아온 존재다. 해녀는 여성성의 은유가 아니라, 바다와 맺어온 가장 오래된 계약을 몸으로 살아내는 사람이다.
이러한 독해는 변시지의 예술을 지역적 특수성에 가두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반대다. 가장 깊이 특정한 것에서 가장 넓은 보편이 나온다. 변시지의 황토색은 제주의 흙이면서 동시에 인간 존재의 근원적 조건을 말한다. 그의 까마귀는 제주의 새이면서 동시에 고독 속에서도 무너지지 않는 모든 존재를 대변한다.
나는 스미소니언에서 아시아 각지의 예술을 연구해왔다. 그중에서도 변시지의 작품은 특별한 자리를 차지한다. 그것은 세계 어느 미술관의 어느 작품과 나란히 놓여도 스스로의 중심을 잃지 않는다. 빌려오거나 모방한 것이 없기 때문이다. 이 예술은 이 땅에서만, 이 시간에만, 이 사람에게서만 가능했다.
탄생 100주년을 맞아 변시지의 작품이 더 넓은 세계의 눈앞에 서기를 바란다. 그의 황토빛 바람은 제주를 넘어 불어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