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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생 100주년 · 1926–2026/서문 · 100주년 기념판

서문 · 100주년 기념판

변시지 — 풍토의 화가, 바람을 삼킨 사람

1926년 제주에서 태어나 2013년 그 섬에서 생을 마친 변시지는, 한국 근현대 미술사에서 가장 독자적인 궤적을 그린 화가 중 한 사람이다.

여섯 살에 일본으로 건너가 오사카 미술학교에서 수학하고, 1947년 스물한 살에 일본 최대 공모전 광풍회(光風會)에 최연소로 입선하며 화려하게 등단했다. 그러나 그는 1957년 명성의 정점에서 모든 것을 내려놓고 서울로 돌아왔다. 그후 비원시대를 거쳐, 50대 초반에 고향 제주로의 귀환은 도피가 아니었다. 바람이 가르쳐준 방향으로, 자신을 낳은 땅으로 걸어 들어가는 행위였다.

제주에서 변시지는 새로운 언어를 찾았다. 마른 풀잎색과 먹(墨), 그리고 바람의 여백. 서양 근대 회화의 문법을 완전히 소화한 자만이 그것을 이렇게 자유롭게 버릴 수 있었다. 그의 캔버스에는 까마귀가 날고, 조랑말이 서고, 해녀가 숨을 참는다. 형태는 단순하되 깊이는 무한하다. 설명하지 않고, 다만 존재한다.

그는 자신의 예술을 '풍토적 모더니즘(風土的 Modernism)'이라 부르지 않았다. 그러나 그의 그림은 와쓰지 데쓰로가 말한 풍토(風土)의 개념, 즉 기후와 지형이 인간의 존재 방식을 빚어내는 힘을 가장 정직하게 증언한다.

탄생 100주년을 맞아 우리는 이 아카이브를 엮었다. 100점의 작품, 100편의 시와 에세이. 화가가 남긴 것들을 다시 읽고, 그것들이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는지를 귀 기울이기 위해.

바람은 아직 제주를 지나고 있다. 황토빛 하늘 아래, 그의 선(線)들은 여전히 숨 쉬고 있다.

— 변시지 탄생 100주년 기념사업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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