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시지 풍토일력 365 · 100주년 기념판
풍토일력 365
열두 달, 열두 낱말. 하루에 한 문장씩 화가의 풍토를 읽습니다.
1월 · 바람
31일-
1
바람은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풀을 눕히고, 나무를 기울이며 지나간다.
보이지 않는 것이 가장 오래 남는다. 제주의 들판은 오래전부터 이것을 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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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바람이 먼저 와 있었고, 우리는 뒤늦게 그것을 읽는다.
기척은 형상보다 먼저 온다. 바람은 말이 없지만 지나간 자리에 늘 무언가를 남겨 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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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흔들리는 것이 무너지는 것은 아니다.
소나무는 바람에 기울어지지만 뿌리는 그대로이다. 흔들림은 버팀의 다른 이름일 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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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바람은 방향을 가리지 않는다.
제주의 바람은 동쪽에서 왔다가 남쪽으로 돌아간다. 그 변화 속에서도 들판은 자리를 지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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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보이지 않는 힘이 화면을 가득 채우고 있다.
변시지의 캔버스에 바람은 없다. 그러나 모든 것이 바람을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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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풀잎이 눕는 방향이 바람의 서명이다.
바람은 스스로를 그리지 않는다. 풀과 나무와 사람을 빌려 자신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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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바람 앞에서는 곧은 것이 먼저 부러진다.
유연한 것이 오래 산다. 빳빳함보다 흔들림이 더 깊은 생존의 방식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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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기침 같은 바람이 지나간다.
짧고 강하게. 그리고 사라진다. 그러나 그것이 지나간 자리의 풀은 한참을 떨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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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바람은 소리를 빌립니다.
대나무 사이를, 처마 끝을, 빈 병 입구를. 바람은 언제나 빌린 소리로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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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멈추지 않는 것이 있다.
해가 지고 밤이 와도 제주의 바람은 멈추지 않았다. 그 지속이 풍토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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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바람 속에서도 자기 자리를 지키는 것들이 있다.
돌담, 소나무, 그리고 홀로 서 있는 사내. 변시지는 그것들을 그렸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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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흔들리는 선이 바람을 기억한다.
황토빛은 태양과 바람과 시간이 한 자리에 만나 남긴 색. 말 없이도 살아온 흔적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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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바람은 가장 가난한 화가이다.
도구도 없이, 물감도 없이 들판 전체를 움직인다. 그리고 그림을 남기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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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바람이 지나간 자리에 고요가 온다.
폭풍 뒤의 정적은 폭풍 이전의 것과 다르다. 무언가를 통과한 고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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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이 계절에 바람은 낮게 붑니다.
겨울바람은 무릎 아래로 온다. 풀뿌리 근처에서 제일 차갑고 제일 오래 머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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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바람은 기다리지 않는다.
준비가 되어 있든 아니든, 바람은 온다. 그래서 늘 준비할 수 없는 것을 가르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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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눈에 보이지 않지만 존재하는 것들에 대하여.
바람, 시간, 그리움, 고독. 변시지가 평생 그린 것들은 사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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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바람은 늘 먼저 온다.
비보다 먼저, 추위보다 먼저, 봄보다 먼저. 바람이 먼저 와서 세상을 예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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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바람이 강할수록 뿌리가 깊어진다.
제주의 나무들은 육지보다 낮게 자랍니다. 하지만 뿌리는 더 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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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한 줄기 바람이 이 하루를 열었다.
커튼이 흔들리고, 창문이 덜컹거렸는다. 바람이 오늘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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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바람은 냄새를 운반한다.
바다 냄새, 풀 냄새, 흙 냄새. 제주의 바람은 섬 전체의 기억을 실어 나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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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흔들리는 것들이 서로를 본다.
바람이 불면 풀도 나무도 함께 흔들립니다. 같은 바람 속에서 모든 것이 서로를 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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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바람 앞에 서면 할 말이 줄어듭니다.
설명이 필요 없어진다. 바람이 이미 모든 것을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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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바람은 멀리서 와서 멀리로 간다.
제주를 지나는 바람은 어디서 왔는지 알 수 없다. 그리고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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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바람이 없는 날은 섬이 낯섭니다.
제주에서 바람이 없는 날은 오히려 이상한 날이다. 바람이 있어야 섬다운 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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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바람은 언제나 그 다음을 준비한다.
한 바람이 지나가는 동안 다음 바람이 오고 있다. 바람은 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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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우리는 바람을 막으려 했지만 바람은 멈추지 않았다.
돌담도, 바람막이도 결국 함께 사는 법을 배웠는다. 막는 것보다 견디는 것이 더 오래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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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바람의 온도가 계절을 알려준다.
피부로 먼저 압니다. 봄바람인지, 겨울바람인지. 달력보다 바람이 더 정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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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이 달이 끝나도 바람은 남는다.
1월이 지나도 바람의 기억은 몸에 남아 있다. 풍토는 그렇게 몸에 쌓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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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바람 속에 서 있었다는 것, 그것으로 충분한다.
오늘 하루 바람을 맞으며 서 있었다. 그 자리에 있었다는 것만으로 하루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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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바람은 여전히 불고 있으니까.
변시지가 떠난 뒤에도 서귀포의 바람은 멈추지 않았다. 예술도 그렇다.
2월 · 고독
28일-
1
고독은 혼자가 되는 일이 아니다. 끝내 자기 곁에 남는 일에 가깝다.
누구에게도 다 말할 수 없는 마음, 오래 침묵한 시간, 설명되지 않아도 한 사람의 중심이 되는 안쪽의 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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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고독을 슬픔으로만 보지 않으려 한다.
깊이로 읽으려 한다. 바람을 오래 맞은 존재가 끝내 자기 안에 남기는 가장 낮고 단단한 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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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혼자 있는 시간이 자기를 만드는 시간이다.
사람들 속에서는 자기를 잊기 쉽다. 고독 속에서만 자기의 목소리가 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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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고독은 안쪽의 자리이다.
겉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그 자리가 없으면 사람은 오래 서 있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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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서귀포에서 혼자 보낸 40년.
그것은 결핍이 아니었다. 선택이었다. 고독을 재료 삼아 만든 예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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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파도와 대화할 수 있었던 것은 혼자였기 때문이다.
타인의 목소리들이 사라질 때 비로소 자연의 목소리가 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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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고독은 매일 먹어야 할 밥이었다.
변시지는 고독을 피하지 않았다. 꼭꼭 씹어 삼켜 붓을 들 힘으로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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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아무도 없는 작업실에서 캔버스가 말을 겁니다.
사람이 없어야 비로소 사물이 말한다. 고독이 열어 주는 대화의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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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고독은 벌이 아니라 조건이다.
창조는 본질적으로 혼자의 일이다. 누구도 대신 만들어 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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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조용해지면 자기가 조금 더 보이다.
소음이 줄어들면 자신의 윤곽이 드러난다. 고독은 자기를 선명하게 하는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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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고독은 감옥이 아니라 우주였다.
변시지에게 서귀포의 적막은 가두는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넓어지는 공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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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두려움도 있었지만 별 하나가 보였다.
내면 가장 깊은 곳까지 내려갔을 때, 어둠 속에서 하나의 빛이 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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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혼자 걷는 길이 가장 오래 기억된다.
함께 간 길은 대화가 기억된다. 혼자 간 길은 발아래 풀이, 바람이, 침묵이 기억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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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고독은 자기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조건이다.
관광객의 눈이 아니라 거주자의 몸으로 건너간 풍토. 변시지는 제주를 통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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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외로움과 고독은 다르다.
외로움은 타인을 원하는 마음이다. 고독은 자기와 함께 있기를 선택한 상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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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고독 속에서 1300점이 태어났다.
변시지는 혼자였기에 1300점을 그릴 수 있었다. 고독의 생산성은 이렇게 증명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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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사람이 없어야 제주가 들립니다.
바람 소리, 파도 소리, 까마귀 소리. 고독이 섬의 목소리를 열어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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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고독은 연료이다.
예술가는 고독을 피하는 자가 아니다. 그것을 땔감 삼아 영혼을 태우는 자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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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혼자이기에 가족이 더 그리웠고, 그리움이 그림이 되었다.
부재가 존재를 만들기도 한다. 멀리 있는 사람이 캔버스 위에 나타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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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자기 곁에 남는 것이 자기를 만듭니다.
오래 혼자였던 사람은 자기 자신과 가장 가까워진다. 그것이 고독의 선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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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고독도 씹으면 단맛이 난다.
처음에는 쓰지만, 오래 있으면 익숙해지고, 더 오래 있으면 없으면 섭섭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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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고독이 없었다면 바다를 그릴 수 없었을 것이다.
바다의 고요를 알려면 먼저 자기 안의 고요를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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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더 이상 외롭지 않은 날, 고독이 비로소 보이다.
고독에 익숙해진 날, 그것이 실은 선물이었음을 알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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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고독은 가장 조용한 형식의 자유이다.
누구의 것도 아닌 시간. 누구의 눈도 없는 공간. 그 안에서 사람은 가장 자기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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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이 달이 끝나도 고독은 안쪽에 남는다.
2월이 지나도 고독의 자리는 사라지지 않는다. 그것은 이미 그 사람의 일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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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고독을 땔감 삼아 영혼을 태우는 자들이다.
예술가는 고독을 피하지 않는다. 그것을 연료 삼아 더 깊이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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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자기 곁에 끝내 남는 일. 고독은 그 일에 가장 가까운 이름이다.
혼자인 날에도 자기와 함께 있었다. 그 동행이 오늘을 이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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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고독은 외로움이 익어 깊이가 된 것이다.
처음에는 외로움이었다가, 시간이 지나면 깊이가 된다. 변시지의 40년이 그 증거이다.
3월 · 선
31일-
1
선은 윤곽이 아니다. 형태보다 먼저 오는 마음의 방향이다.
한 번 지나간 존재의 흔적이며, 그 안에 바람과 숨과 망설임이 함께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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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곧은 선보다 떨리는 선이 더 오래 살아 있다.
떨림 안에 바람과 숨이 있다. 완벽한 선은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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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선 하나 긋는 일에 목숨을 겁니다.
변시지는 그렇게 말했다. 선은 결심이며, 그 결심이 형태보다 먼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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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한 번 그어진 선은 되돌릴 수 없다.
그래서 선은 정직하다. 후회도, 수정도 없는 가장 솔직한 형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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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선은 말하지 않지만 남는다.
설명 없이도 전해지는 것이 있다. 선이 그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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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망설임도 선이 된다.
붓이 한 번 멈추었다가 다시 움직인 자국. 그 망설임이 화면에 남아 말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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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선은 관계이다.
이쪽과 저쪽 사이. 여기와 저기 사이. 선은 언제나 두 개 사이에서 생겨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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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검은 선 하나가 화면 전체의 침묵을 붙듭니다.
적은 것이 많은 것을 담는다. 선 하나가 캔버스 전체의 무게 중심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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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선은 존재의 흔적이다.
지나간 자리에 선이 남는다. 사람도, 바람도, 시간도 선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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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갈필로 그어진 선에는 숨이 남아 있다.
기름기를 뺀 붓으로 그은 선. 그 거칠음 속에 화가의 호흡이 그대로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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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잘 그린 선보다 책임진 선을 원했다.
아름다움보다 진실함이 먼저이다. 변시지의 선은 그런 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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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선이 멈추는 자리에 여백이 시작된다.
끝이 있어야 공간이 생긴다. 선의 멈춤이 여백을 만들고, 여백이 선을 살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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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곡선은 바람을 기억한다.
곧게 자라지 못한 나무는 바람의 역사를 몸에 새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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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선을 긋는다는 것은 이 세계에 흔적을 남기는 일이다.
무언가를 한다는 것, 만든다는 것의 가장 기본적인 형식이 선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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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선은 적지만 가볍지 않는다.
짧은 선 하나가 오랜 시간을 담을 수 있다. 무게는 길이가 아니라 깊이에서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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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3월의 선은 봄을 향해 기웁니다.
겨울을 통과한 선들이 봄 쪽으로 천천히 방향을 바꿉니다. 선도 계절을 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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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붓을 드는 것이 이미 하나의 결심이다.
그리겠다는 결심, 이 세계를 피하지 않겠다는 결심. 선이 시작되기 전에 이미 선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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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흔들리는 선이 실패가 아니다.
선택의 흔적이다. 그 선이 화면의 진실을 보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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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선은 소유가 아니라 만남이다.
형식은 이론에서 오지 않는다. 매 순간의 선택이 쌓이고 쌓여 비로소 형태를 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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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선이 끝나는 자리에서 그림이 시작된다.
선이 모든 것을 말하지 않아도 된다. 말하지 않은 부분이 보는 이의 것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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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한 줄의 결심이 하루를 만듭니다.
오늘 하루도 작은 선 하나처럼 그어 나간다. 어디로 갈지 몰라도, 긋는 것이 먼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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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선은 날씨를 담는다.
바람 부는 날의 선과 고요한 날의 선은 다르다. 선은 그날의 기상을 기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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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선을 보면 화가가 보이다.
기술이 아니라 태도가 드러난다. 선 속에 그 사람의 삶이 스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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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서예적 선과 회화적 선이 만나는 자리.
그 선들은 동양의 붓글씨와 서양의 회화가 만나는 지점에 있다. 두 세계 사이에서 자기 언어를 만들어낸 자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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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선 하나로 하늘과 땅을 나눕니다.
수평선. 그 한 줄이 세계를 두 개로 가릅니다. 가장 단순하면서 가장 근원적인 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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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이 달의 선들이 쌓여 봄을 만들겠다.
하루에 선 하나씩. 3월의 31개 선이 모이면 봄 한 철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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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선은 짧지만 오래 간다.
수십 년 뒤에도 캔버스 위에서 선이 살아 있는 이유이다. 책임진 선은 시간을 이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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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무엇을 그릴 것인가보다 어떻게 남길 것인가를 묻는 시간.
기술의 문제가 아니다. 태도의 문제이다. 선은 그 태도의 첫 번째 대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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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선이 떨리는 것은 살아 있다는 뜻이다.
완벽하게 곧은 선은 기계가 그립니다. 사람의 선은 떨립니다. 그 떨림이 생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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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선 하나에서 모든 것이 시작된다.
그림도, 글도, 건축도. 하나의 선이 세계를 열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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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이 달의 마지막 선을 조용히 긋는다.
3월이 끝난다. 한 달 동안 그어온 선들이 모여 하나의 계절이 된다.
4월 · 풀
30일-
1
풀은 낮다. 그러나 낮다는 것이 약하다는 뜻은 아니다.
오래 견딘다는 뜻에 더 가깝다. 제주의 들판에서 풀은 늘 바람을 먼저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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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밟혀도 다시 올라오는 것이 풀이다.
풀의 버팀은 눈에 띄지 않는다. 그러나 멈추지도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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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마른 풀잎색 안에 시간이 담겨 있다.
바래고 마른 것들이 실은 가장 오래 버텨온 것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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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풀은 땅을 떠나지 않는다.
아무리 바람이 세도 풀은 땅에 붙어 있다. 그 붙어 있음이 풀의 철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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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화려한 꽃보다 먼저 들판이 깨어난다.
봄은 꽃이 아니라 풀에서 먼저 온다. 낮은 것이 먼저 움직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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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풀 한 포기에도 우주가 있다.
작은 것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큰 것이 보이다. 풀 한 포기의 뿌리에 깊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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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세상은 큰 것보다 작은 것들로 더 오래 유지된다.
풀이 사라지면 들판이 사라진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이 세계를 받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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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풀은 모양을 바꾸며 계절을 산다.
봄에는 연두, 여름에는 짙은 초록, 가을에는 갈색, 겨울에는 흰색. 풀은 순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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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낮게 사는 것에 지혜가 있다.
바람이 세게 불수록 낮은 것이 더 오래 남는다. 겸손함이 생존의 방식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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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풀은 말이 없지만 계절을 알린다.
봄을 가장 먼저 알아채는 것이 풀이다. 소리 없이 일어나 세상에 계절을 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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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제주의 들판은 풀로 덮여 있다.
바람이 세도, 돌이 많아도, 풀은 들판 전체를 자기 것으로 삼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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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풀잎 위의 이슬이 하루를 시작한다.
아무도 보지 않는 새벽에도 풀은 이슬을 받는다. 쉬지 않고 자기 일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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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마른 풀잎색은 변시지의 황토빛과 닮아 있다.
가장 화려하지 않은 색이 가장 오래 남는다. 바랜 것들의 아름다움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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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풀은 겨울을 지내고 봄에 돌아온다.
사라진 것이 아니었다. 기다리고 있었다. 돌아오는 것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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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낮은 생명이 들판을 지킨다.
풀이 없으면 흙이 쓸려간다. 보이지 않는 작은 것들이 큰 것을 붙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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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풀을 보면 마음이 낮아진다.
자꾸 높아지려 할 때 풀을 본다. 낮음이 더 오래 간다는 것을 풀이 보여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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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4월 들판에 풀이 돌아왔다.
겨울이 가고 풀이 깨어난다. 해마다 같은 자리에서 같은 방식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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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풀잎 하나가 바람을 가장 먼저 압니다.
바람이 오면 풀잎이 먼저 반응한다. 작은 것이 가장 예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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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풀의 초록이 눈을 쉬게 한다.
봄의 초록은 눈의 피로를 풀어 줍니다. 자연이 주는 가장 오래된 치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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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밟혀도 다시 일어난다. 그것이 풀의 방식이다.
쓰러지지 않는 것이 강한 것이 아니다. 다시 일어서는 것이 강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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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풀 향기가 봄을 만들어 냅니다.
봄의 냄새는 꽃이 아니라 풀에서 온다. 흙과 섞인 풀 향기가 계절을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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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작은 것들이 들판을 채웁니다.
바다가 모든 경계를 허무는 자리. 그 자리에서만 새로운 것이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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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풀은 자기 자리에서 자랍니다.
여기가 아닌 다른 곳을 부러워하지 않는다. 지금 여기 발이 닿은 이 땅에서 자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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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오래 견딘 것이 결국 들판을 덮는다.
겨울을 이겨 낸 뿌리들이 봄에 들판 전체를 초록으로 물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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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풀잎색은 가장 정직한 색이다.
있는 그대로의 색. 과장도 축소도 없는 색. 마른 풀의 색이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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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낮게 자라는 것들의 고요한 품위.
눈에 띄지 않으면서도 들판의 기초가 된다. 조용한 것들의 품위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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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풀이 사라지면 들판이 사막이 된다.
작은 것의 부재가 큰 변화를 만듭니다. 풀 한 포기의 무게를 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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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봄 들판에 서면 자신도 풀 한 포기 같다.
넓은 들판 위에 서면 사람도 하나의 작은 존재가 된다. 그것이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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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풀은 해마다 새로 태어나지만 자리는 바뀌지 않는다.
같은 곳에서, 같은 방식으로. 변화 속의 항상성이 풀을 풀답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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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이 달의 마지막 날, 들판은 온통 초록이다.
4월이 풀을 키웠는다. 다음 달에는 조랑말이 이 들판 위를 걸을 것이다.
5월 · 조랑말
31일-
1
조랑말은 크지 않는다. 그러나 그 작은 몸으로 들판의 넓이와 바람의 높이를 오래 품는다.
말은 말을 하지 않지만, 오래 함께 걷는 존재가 남기는 침묵은 사람의 말보다 더 깊을 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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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느림, 인내, 곁, 숨, 그리고 함께 있다는 것의 조용한 품위.
조랑말이 보여 주는 것들이다. 빠르고 화려한 것 말고도 아름다운 것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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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조랑말은 풍경의 장식이 아니라 들판의 낮은 중심이다.
그 곁에서 사람의 고독도 조금 덜 차갑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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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말과 함께 걷다 보면 느림이 친구가 된다.
빠르게 가야 할 이유를 잊는다. 말의 걸음이 다른 시간을 열어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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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조랑말의 눈에는 판단이 없다.
사람을 볼 때 조용히 받아들이다. 그 눈 앞에서 사람도 조금 더 솔직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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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말은 바람을 먼저 압니다.
귀를 세우고 몸을 돌립니다. 사람보다 먼저 기척을 감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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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조랑말은 제주가 만든 몸이다.
바람 많고 땅이 척박한 곳에서 작고 단단하게 자랐는다. 환경이 몸을 만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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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함께 걷는다는 것의 무게.
같은 방향으로 걸어가는 존재가 있다는 것. 말은 그 감각을 조용히 가르쳐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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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조랑말의 걸음에 서두름이 없다.
들판을 거닐 때 조랑말은 급하지 않는다. 그 느림이 오히려 품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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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말의 숨소리가 들판을 채웁니다.
조용한 곳에서 말의 호흡을 들을 수 있다. 그 소리가 들판을 살아 있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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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변시지의 캔버스 위 조랑말은 고독하지 않는다.
바람 속에 있어도, 혼자여도, 조랑말은 들판과 함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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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느린 것이 나쁜 것이 아니다.
오래 가는 것이 빠른 것보다 좋을 때가 있다. 조랑말이 그것을 보여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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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말은 말이 없어도 위로가 된다.
곁에 있는 존재만으로 충분할 때가 있다. 말이 필요 없는 위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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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조랑말의 갈기가 바람에 흩어진다.
들판과 바람과 말이 하나가 되는 순간. 변시지는 그 순간을 캔버스에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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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5월의 들판에서 조랑말이 풀을 뜯는다.
긴 겨울과 봄을 지나 풀이 무성해졌다. 말도 그것을 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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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동행의 시간이 깊이를 만듭니다.
함께 오래 걸어온 것들이 있다. 그것들이 삶의 두께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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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조랑말은 험한 땅에서도 발을 찾는다.
돌이 많아도, 비탈이 가파라도 말은 자기 길을 찾는다. 그것이 적응의 기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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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작은 몸에 큰 것이 담겨 있다.
크기가 전부가 아니다. 조랑말 안에 제주의 긴 역사와 바람이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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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말의 시선이 멀리 수평선을 향한다.
조랑말은 들판 너머를 본다. 그 시선이 어디로 가는지 우리는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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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함께 있는 것이 말하는 것보다 더 많을 때가 있다.
오래 곁에 있어 준 존재. 말없이 함께한 시간. 그것이 가장 깊은 동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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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조랑말의 발굽 소리가 길을 만듭니다.
말이 오래 걷는 곳에 길이 생긴다. 반복이 흔적을 만들고 흔적이 길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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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바람 속에서도 말은 자기 속도를 지킨다.
주변이 빠르게 변해도 말은 자기 걸음으로 걷는다. 그것이 말의 품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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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조랑말의 등이 따뜻한다.
생명의 온기. 살아 있는 것이 가진 따뜻함이 손 아래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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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들판에 말이 있으면 들판이 살아난다.
풍경 속의 생명. 조랑말 한 마리가 들판 전체를 깨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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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조랑말의 눈물은 보이지 않는다.
말이 아프거나 슬퍼도 우리는 잘 모른다. 그래서 더 조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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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느린 동행이 삶을 깊게 한다.
빠르게 많은 것을 보는 것보다, 천천히 하나를 함께 보는 것이 더 오래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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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조랑말이 가는 곳에 이야기가 생긴다.
말이 지나간 길에는 기억이 쌓인다. 이야기는 그렇게 만들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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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말없이 함께 있다는 것의 아름다움.
오래된 관계는 말이 없어도 된다. 침묵이 언어보다 더 많은 것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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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제주 조랑말은 섬의 영혼이다.
작고 단단하고 느리고 오래 가는. 그것이 섬의 성격과 닮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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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5월이 가고 조랑말은 들판에 남는다.
달이 바뀌어도 말은 그 자리에 있다. 계절이 지나도 들판은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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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느림이 곧 깊이이다.
서두르지 않는 것이 느린 게 아니다. 더 많이 보고 더 깊이 담는 방식이다.
6월 · 바다
30일-
1
바다는 끝처럼 보이지만 실은 멀어짐의 형식이다.
수평선은 닿지 않는 것들의 가장 조용한 약속이다. 제주의 바다는 늘 열려 있으면서도 쉽게 허락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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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수평선은 만남의 선처럼 보이지만 끝내 닿지 않는다.
그 닿지 않음이 오히려 오래 바라보게 만듭니다. 불가능이 아름다움이 되는 자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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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바다 앞에 오래 서 있으면 마음도 수평을 배웁니다.
흔들리다가도 바다를 보면 마음이 넓어진다. 바다가 가르치는 것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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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바다는 풍경이기 전에 사람 안쪽의 자리를 넓히는 존재이다.
눈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몸으로 느끼는 것. 바다는 그렇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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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제주의 바다는 아름답기 전에 두렵다.
언어는 시대와 함께 늙는다. 그러나 침묵은 어느 시대에도 지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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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수평선은 어디서나 같은 높이에 있다.
가까이 가도 멀리 있어도 수평선은 언제나 눈높이에 있다. 그 항상성이 위로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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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바다는 사라지지 않는다.
사람이 오고 가도 바다는 그 자리에 있다. 바다의 지속이 삶을 안심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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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파도는 쉬지 않는다.
밤에도, 아무도 없을 때도 파도는 온다. 쉬지 않는 것들이 세계를 유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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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바다 냄새가 멀리서도 온다.
아직 바다가 보이지 않아도 냄새로 먼저 압니다. 감각이 눈보다 앞서는 순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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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6월의 바다는 가장 푸릅니다.
여름이 시작되는 바다. 빛이 가장 강하고 색이 가장 깊은 계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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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바다는 경계를 지우는 곳이다.
하늘과 바다가 만나는 곳에서 경계가 사라진다. 이것도 저것도 아닌 자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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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파도 소리가 침묵을 채웁니다.
조용한 것 같지만 파도가 있다. 바다의 침묵은 소리로 가득한 침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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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바다를 오래 보면 자기가 작아진다.
그 작아짐이 불편하지 않는다. 오히려 홀가분한다. 바다 앞의 겸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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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변시지의 바다는 황토빛이다.
파란 바다가 아니다. 그가 본 바다, 느낀 바다, 살아온 바다의 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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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파도가 돌아온다. 밀려났다고 사라진 것이 아니다.
물러섰다가 다시 오는 것. 파도가 가르치는 용기의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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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바다 앞에서 생각이 멈춥니다.
너무 크고 넓어서 생각이 따라가지 못한다. 멈춤이 오히려 쉬는 시간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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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갈매기가 수평선을 가로지릅니다.
선 하나가 화면을 가릅니다. 새 한 마리가 넓은 하늘에 점 하나를 찍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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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깊이는 눈에 보이지 않는다.
바다의 깊이는 수면만 봐서는 알 수 없다. 보이지 않는 것이 더 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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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바다는 계절마다 다른 얼굴을 한다.
여름 바다와 겨울 바다는 같은 바다이지만 다른 바다이다. 바다도 살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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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수평선을 보면 먼 곳이 생각난다.
누군가가, 어딘가가, 무언가가 떠오릅니다. 바다는 그리움을 부르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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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바다 위의 빛이 움직인다.
물결 위에서 빛이 흩어지고 모이다. 그 움직임을 오래 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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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섬에서 바다를 보는 것과 육지에서 보는 것은 다르다.
사방이 바다인 곳에서 보는 바다는 다르다. 둘러싸인 바다는 더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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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바다 앞에서 작아지는 것이 자유롭다.
거대함 앞에서 자신을 내려놓는 것. 그것이 바다가 주는 선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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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파도가 달라도 바다는 하나이다.
각각의 파도는 다르지만 모두 같은 바다에서 온다. 다양함 속의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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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바다는 멀어짐을 가르친다.
떠나보내는 것, 흘러가게 두는 것. 바다 앞에서 놓아 버리는 법을 배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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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제주 바다의 색은 그날의 하늘과 바람이 결정한다.
같은 바다도 날마다 색이 다르다. 바다는 날씨를 담는 거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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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바다 앞에 서면 용감해지기도 한다.
거대한 것 앞에서 오히려 작은 걱정이 작아진다. 바다의 위로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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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건너감, 멀어짐, 깊이, 그리고 오래 바라보게 되는 마음.
바다가 주는 것들이다. 눈으로 받는 것들이 이렇게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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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이 달의 마지막 파도가 해변에 닿는다.
6월이 끝난다. 바다는 계속될 것이다. 다음 달도, 그 다음 달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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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바다는 여전히 거기 있다.
우리가 보지 않을 때도, 자고 있을 때도. 바다는 그 자리에서 파도를 치고 있다.
7월 · 태풍
31일-
1
태풍은 두렵다. 그러나 감추어져 있던 것들을 드러내는 시간이기도 한다.
크게 흔들리는 날에야 비로소 무엇이 남고 무엇이 무너지는지가 보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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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태풍은 부수는 힘이면서 남을 것을 가려내는 바람이다.
거센 날이 지나고 나면 우리는 버틴 것들의 표정을 다시 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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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견딤, 드러남, 상처를 지나도 끝내 남는 형상.
태풍이 지나간 자리에 살아남은 것들이 있다. 그것들이 진짜였던 것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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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7월의 제주에 태풍이 온다.
예고가 있어도 준비가 다 되지 않는다. 그러나 지나고 나면 하늘이 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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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강한 것이 먼저 쓰러지기도 한다.
뻣뻣한 것이 바람에 먼저 부러진다. 유연한 것이 태풍을 견딥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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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태풍 속에서 뿌리가 시험받는다.
내면 가장 깊은 곳까지 내려갔을 때, 어둠 끝에서 별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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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폭풍이 지나간 자리가 가장 조용한다.
소란 뒤의 고요. 태풍이 지나간 새벽의 공기는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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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변시지의 폭풍은 마음속 저항이었다.
독재의 시대에 화가가 선택한 저항의 방식. 캔버스 위의 폭풍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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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흔들린 뒤에도 제자리로 돌아오려는 힘.
생의 복원력. 태풍이 지나도 다시 일어서는 것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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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태풍 전의 고요가 더 무겁다.
오기 전의 긴장. 예감이 때로는 실제보다 더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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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폭풍 속 선은 난무(亂舞)한다.
통제를 잃은 선. 그러나 그 선들이 모여 가장 강렬한 화면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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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태풍도 지나간다.
아무리 강한 것도 영원하지 않는다. 지나가는 것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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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버티는 것들의 표정이 태풍 뒤에 드러난다.
폭풍이 지나면 살아남은 것들이 더 선명하게 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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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빗줄기가 굵어진다.
태풍이 가까워지면 빗줄기가 세진다. 가까워지는 것들은 먼저 소리로 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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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폭풍 안에서도 그림을 그립니다.
변시지는 태풍이 와도 캔버스 앞에 섰는다. 그것이 예술가의 일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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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태풍의 눈은 고요한다.
가장 강한 폭풍의 중심에 고요가 있다. 역설적인 평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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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상처를 지나도 남는 것들이 진짜이다.
태풍이 할퀴고 간 자리에서도 살아남은 것들이 있다. 그것들이 진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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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흔들린 적 없는 것은 아름답지 않는다.
폭풍을 맞은 나무가 더 강한다. 시련이 형태를 만들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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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태풍이 지나면 하늘이 가장 맑다.
격렬한 것 뒤에 오는 청명함. 태풍의 선물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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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폭풍 속 사내는 허리를 굽힌다.
맞서는 게 아니다. 바람과 함께 형태를 바꾸며 버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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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제주의 7월은 태풍의 계절이다.
해마다 오는 것. 예고된 것. 그러나 매번 다른 강도로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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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격렬한 날이 있어야 조용한 날이 빛난다.
태풍 없는 제주는 제주가 아니다. 강한 것이 있어야 부드러운 것도 살아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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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뿌리의 무게가 폭풍을 견딥니다.
땅속 깊이 뻗은 뿌리가 태풍 위의 나무를 붙들고 있다.
-
24
태풍이 오기 전 바다가 이상한다.
색이 변하고, 파도의 방향이 달라진다. 바다가 먼저 태풍을 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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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난무(亂舞)가 끝나면 침묵이 온다.
가장 격렬한 운동 다음에 오는 완전한 정지. 그 대비가 폭풍의 드라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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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태풍 속에서 무엇이 먼저 떨어지는지 본다.
약한 것이 먼저 떨어진다. 태풍은 솔직한 심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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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폭풍을 통과한 것이 더 아름답다.
바람에 깎이고 비에 씻긴 것들이 더 선명한 형태를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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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태풍이 지나간 들판에 풀이 다시 섭니다.
눕혔던 것들이 다시 일어난다. 생명은 쉽게 포기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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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이 달의 태풍이 지나갔다.
7월이 끝난다. 폭풍을 통과했다. 다음 달에는 빛의 시간이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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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흔들리고 난 뒤에야 자기가 어디 서 있는지 압니다.
태풍이 지나고 나서야 자신이 얼마나 견뎌 왔는지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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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태풍도 제주의 풍토이다.
바람만이 아니다. 태풍도, 폭우도 제주를 제주답게 만드는 것들이다.
8월 · 빛
31일-
1
빛은 환하게 비추는 것만이 아니다. 오래 머문 빛은 사물을 바래게 하며 시간의 색으로 남는다.
제주의 햇빛은 밝기보다 기후에 가깝다. 마른 풀잎색의 침전이 더 오래 남는다.
-
2
표면의 기억, 바랜 색, 견딘 시간.
빛이 오래 머문 자리에 남는 것들이다. 시간의 흔적이 색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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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강한 햇빛 끝에 남은 색은 더 조용하고 더 멀리 간다.
화려한 것은 빨리 사라진다. 오래 바랜 것이 더 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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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빛은 사물을 화려하게 하기보다 덜어 내고 깊게 만듭니다.
오래된 것들이 아름다운 이유이다. 빛이 시간과 함께 사물을 깎아 냅니다.
-
5
8월의 빛이 가장 강한다.
한 해 중 가장 환한 달. 그러나 그 빛이 가장 빨리 바래게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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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황토빛은 시간이 만든 색이다.
변시지의 황토빛은 선택이 아니었다. 빛과 시간이 함께 만들어 낸 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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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빛이 있어야 그림자도 있다.
빛만으로는 형태가 보이지 않는다. 그림자가 있어야 윤곽이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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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여름 아침의 빛과 저녁의 빛은 같은 빛이 아니다.
방향이 다르고 색이 다르다. 빛도 하루를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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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빛이 풀잎색을 만듭니다.
같은 풀이라도 빛에 따라 색이 달라진다. 색은 빛의 산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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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오래된 것들이 더 아름다운 이유가 있다.
빛이 오래 머물러 표면을 닦았기 때문이다. 시간의 빛이 사물에 깊이를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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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빛은 공평하다.
모든 것에 고르게 닿는다. 귀천 없이, 선악 없이 빛은 내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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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바랜 것이 나쁜 것이 아니다.
시간이 지워 낸 색. 그 바램 속에 오래 버텨 온 흔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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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변시지의 서귀포는 빛의 도시이다.
가난이 예술을 위협한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것이 오히려 조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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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빛 속에서 사물의 진짜 색이 보이다.
인공조명이 아닌 자연광에서만 보이는 색이 있다. 빛이 진실을 드러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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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절제된 밝음이 더 오래 눈에 남는다.
눈부신 것은 금방 잊힌다. 조용한 빛이 더 오래 기억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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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태양의 원형이 변시지의 화면에 있다.
추상적인 원. 그러나 그것이 빛의 근원이며 하루의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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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빛이 가장 강한 정오에 그림자가 가장 짧다.
높은 것은 그림자를 짧게 한다. 빛의 정점에서 어둠도 줄어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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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빛을 받는 것과 빛을 담는 것은 다르다.
빛을 받는 것은 순간이다. 빛을 담는 것은 시간이 걸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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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빛이 바다를 움직이게 한다.
물결 위에서 빛이 춤을 춥니다. 빛과 물이 만나는 자리의 아름다움.
-
20
마른 풀잎색 안에 여름 빛이 침전되어 있다.
한여름의 강한 빛이 풀잎을 말리고 그 빛을 색 속에 가두어 놓는다.
-
21
빛이 그림자를 만들고, 그림자가 공간을 만듭니다.
빛만으로는 공간이 없다. 어둠이 있어야 깊이가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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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오래된 창문으로 들어오는 빛.
낡은 창문 사이로 들어오는 빛이 특별하다. 시간과 함께 걸러진 빛이다.
-
23
빛이 하루를 시작하고 빛이 하루를 닫는다.
아침 빛과 저녁 빛. 빛이 하루의 괄호를 만듭니다.
-
24
침전된 빛이 황토가 된다.
오래 머문 빛이 색으로 남는다. 변시지의 황토빛이 그렇게 만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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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빛은 항상 어딘가에서 온다.
태양에서, 달에서, 별에서. 빛에는 출처가 있다. 그 출처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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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가장 따뜻한 색이 황토빛이다.
빛이 오래 머문 자리의 색. 따뜻하지만 화려하지 않은, 조용히 따뜻한 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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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빛이 있는 곳에 생명이 있다.
빛을 찾아 나무가 자라고, 꽃이 피고, 사람이 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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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여름 빛의 끝에 가을이 온다.
8월의 빛이 가장 강하지만, 그 끝에서 빛이 조금씩 기웁니다. 가을의 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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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빛이 사라져도 빛의 기억이 남는다.
해가 지고 나서도 하늘은 한동안 밝다. 빛이 남기고 간 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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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이 달의 빛을 기억한다.
8월의 가장 강한 빛. 그 빛이 바랜 색이 이 해의 황토빛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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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빛은 말하지 않지만 모든 것을 드러냅니다.
숨겨진 것도, 닫힌 것도 빛 앞에서는 드러난다. 빛이 가장 정직한 이유이다.
9월 · 돌담
30일-
1
돌담은 높지 않는다. 바람 많은 곳에서 오래 남기 위해서는 낮음이 더 깊은 지혜가 된다.
돌과 돌 사이의 틈, 천천히 변형되며 버티는 구조, 말없이 날씨를 저장하는 표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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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낮게 버티는 것, 틈을 남겨 두는 것, 오래 견디는 것의 아름다움.
돌담은 막기보다 함께 살기 위해 세워진 벽이다. 그 낮은 구조 안에 제주의 침묵이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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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돌담은 쌓는 것이 아니라 짓는 것이다.
돌 하나하나를 골라 맞춥니다. 그 정성이 돌담을 오래가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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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틈이 있어야 바람이 지나간다.
완전히 막으면 바람이 밀어버립니다. 틈이 돌담을 살립니다. 틈의 지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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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돌담 위에 이끼가 산다.
시간이 쌓이면 돌담에도 생명이 붙는다. 오래된 것들이 가진 풍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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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낮은 것이 오래 간다.
높게 쌓은 담은 바람에 무너진다. 낮게 쌓은 것이 몇 백 년을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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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제주 돌담의 색은 현무암의 색이다.
검고 거친다. 그러나 그 거칠음이 제주의 진짜 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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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돌담은 말없이 날씨를 기억한다.
비가 오면 젖고, 서리가 오면 하얗게 된다. 돌담은 날씨의 일기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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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경계이지만 막지 않는다.
돌담은 여기와 저기를 나누지만, 누구나 볼 수 있다. 투명한 경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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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9월에 돌담이 제일 아름답다.
여름 빛이 가시고 가을 빛이 시작될 때, 돌담의 색이 가장 선명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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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돌담을 쌓는 손이 그 마을을 만들었다.
세대에 걸쳐 돌을 쌓아온 손들. 돌담은 그 손들의 흔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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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돌담 너머로 바다가 보이다.
낮은 담 위로 수평선이 걸립니다. 돌담이 그림의 테두리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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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돌은 돌끼리 맞다.
모양이 다른 돌들이 서로 맞물려 하나가 된다. 다름이 힘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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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돌담을 따라 걸으면 마을이 보이다.
돌담 길을 따라가면 마을의 역사가 펼쳐진다. 돌담이 이야기를 이어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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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낮은 구조 안에 큰 지혜가 있다.
눈에 띄지 않는 높이. 그러나 수백 년을 버텨온 구조. 낮음의 지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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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돌담이 바람을 나눕니다.
이 쪽은 바람이 세고 저 쪽은 조용한다. 돌담 하나가 두 개의 날씨를 만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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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변시지의 돌담에는 침묵이 쌓여 있다.
캔버스 위의 돌담은 단순한 배경이 아니다. 제주의 긴 침묵이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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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무너진 돌담도 다시 쌓는다.
태풍이 무너뜨려도 다시 쌓는다. 그 반복이 마을을 유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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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돌담은 혼자 세우는 것이 아니었다.
마을 사람들이 함께 쌓았다. 돌담 안에 공동체의 기억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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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틈 사이로 바람이 노래한다.
돌담의 틈을 바람이 지나갈 때 소리가 난다. 돌담이 악기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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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돌 하나하나가 자기 자리를 압니다.
제자리에 있는 돌이 담을 만듭니다. 자리를 찾는 것이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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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오래된 돌담일수록 이야기가 많다.
쌓이고 무너지고 다시 쌓인 돌담. 그 반복의 역사가 돌담에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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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돌담 너머에도 삶이 있다.
돌담으로 나뉜 공간이지만, 삶은 이어진다. 경계가 삶을 막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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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가을 햇빛 아래 돌담이 빛난다.
9월의 빛이 돌담 위에 앉는다. 검은 돌이 황금빛을 품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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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쌓고 무너지고 다시 쌓는 삶.
돌담의 방식이 사람의 방식이기도 한다. 무너진 것을 다시 쌓는 것, 그것이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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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돌담 위의 까마귀.
검은 돌 위에 검은 새. 서로 닮은 것들이 자리를 나눠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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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작은 돌들이 모여 긴 담을 만듭니다.
작은 것들의 힘. 하나하나는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모이면 집을 지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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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돌담이 있는 마을에는 시간이 쌓인다.
오래된 돌담 마을에 가면 다른 시간이 흐릅니다. 돌이 시간을 담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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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이 달의 마지막 날, 돌담에 기대어 본다.
9월이 끝난다. 돌담처럼 낮게, 견고하게 한 달을 보냈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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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낮고 단단하게. 그것이 오래 가는 방식이다.
돌담이 가르치는 것이다. 화려하지 않아도, 눈에 띄지 않아도 오래 가는 방식.
10월 · 까마귀
31일-
1
까마귀는 작다. 그러나 그 검은 점 하나가 넓은 들판의 적막을 붙들기도 한다.
돌담 위의 까마귀, 먼 들판의 검은 형상. 황갈색 속에 놓인 가장 적지만 가장 또렷한 존재.
-
2
까마귀는 불길함의 기호가 아니라 남아 있는 적막이 몸을 얻은 형상이다.
작은 것이 전체를 바꾸는 힘. 적은 것이 깊은 침묵을 만드는 힘. 까마귀가 보여 줍니다.
-
3
검은 점 하나가 화면 전체의 긴장을 깨웁니다.
까마귀 한 마리가 앉으면 화면이 달라진다. 작은 것의 힘이다.
-
4
10월의 들판에 까마귀가 내려앉는다.
추수 뒤의 들판. 바람이 식어가는 계절. 까마귀가 그 적막 속에 자리를 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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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변시지는 까마귀가 되었다고 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걸으며 강의했다. 변시지의 사내는 걸으며 존재한다. 걷기는 철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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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검은 것들이 세상을 선명하게 한다.
까마귀의 검은색이 황토빛 들판을 더 황토빛으로 만듭니다. 대비가 색을 살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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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까마귀의 울음소리는 적막을 채웁니다.
소리가 없는 것 같은 들판에 까마귀 소리가 난다. 그 소리가 오히려 침묵을 깊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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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외다리 까마귀도 섭니다.
없는 것이 있어도 산다. 결핍 속에서도 존재한다. 까마귀가 그것을 보여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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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까마귀는 홀로 있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들판 한가운데 혼자 앉아도 까마귀는 당당한다. 고독을 두려워하지 않는 존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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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검은 형상이 먼 배경에 놓일 때.
황토빛 들판 위의 까마귀. 그 간단한 구도가 강렬한 화면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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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까마귀는 겨울을 미리 압니다.
철새보다 먼저 계절의 변화를 감지한다. 까마귀가 더 날아다니면 겨울이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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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집중의 형상이 까마귀이다.
작고 검은 한 점. 그것이 화면 전체의 시선을 모은다.
-
13
까마귀의 날개 소리가 조용히 난다.
바람을 가르는 소리. 그 소리가 있어야 까마귀가 날고 있음을 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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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돌담 위에 앉은 까마귀.
검은 돌 위에 검은 새. 닮은 것들이 서로를 알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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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까마귀는 오래 제주에 있었다.
제주의 토착 새이다. 바람이 있는 곳에서 까마귀도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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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까마귀의 시선이 어디를 향하는지 모른다.
무엇을 보는지, 무엇을 생각하는지. 알 수 없는 것들의 깊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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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한 마리가 있으면 더 올 것을 압니다.
까마귀는 혼자 오지 않는다. 한 마리가 신호를 보내고 무리가 따라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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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까마귀 소리에 하루가 시작된다.
이른 아침 까마귀 소리가 난다. 그 소리가 하루의 첫 번째 언어이다.
-
19
가장 검은 것이 가장 또렷한다.
빛이 없는 색이 빛 속에서 가장 선명한다. 까마귀가 그 역설을 보여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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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까마귀가 날면 하늘이 달라 보이다.
까마귀가 하늘을 나는 순간 하늘에 살이 생긴다. 점이 공간을 만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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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까마귀의 적막이 화면에 스밉니다.
그 작은 검은 형상 하나가 캔버스 전체의 침묵을 책임진다. 작은 것이 전체를 붙드는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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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검은 것들은 모두 서로를 압니다.
밤, 먹, 까마귀, 검은 선. 이것들이 변시지의 화면에서 만난다.
-
23
오늘도 까마귀가 들판을 순찰한다.
매일 오고, 매일 난다. 까마귀의 반복이 들판의 리듬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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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까마귀가 앉은 자리에 이야기가 생긴다.
사람도 마찬가지이다. 어딘가에 오래 머물면 그 자리에 이야기가 쌓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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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적막과 까마귀는 친구이다.
고요한 곳에 까마귀가 있고, 까마귀가 있으면 고요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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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까마귀의 검은색이 모든 것을 더 밝게 한다.
가장 어두운 것 옆에 있어야 밝음이 밝아진다. 까마귀의 역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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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작은 것이 큰 것을 담는다.
점 하나에 우주가 있다. 까마귀 한 마리에 들판 전체의 침묵이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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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10월이 끝나면 까마귀만 남는다.
철새들이 떠나고 나면 까마귀가 겨울을 지킨다. 남는 것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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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까마귀를 보면 집중하게 된다.
그 검은 형상 앞에서 시선이 모이다. 까마귀가 집중을 가르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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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이 달의 마지막 까마귀가 날아간다.
10월이 끝난다. 검은 점 하나가 하늘을 건너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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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까마귀는 여기 있었다는 흔적을 남기지 않는다.
날아가면 아무것도 없다. 그러나 우리는 오랫동안 기억한다.
11월 · 여백
30일-
1
여백은 비어 있는 곳이 아니다. 끝내 더 그리지 않기로 남겨 둔 자리이다.
무엇을 채울 것인가보다 어디에서 멈출 것인가를 묻는 시간. 침묵이 설명보다 더 멀리 가는 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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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여백은 공허가 아니라 가능성이다.
그 안에서 바람도 지나가고, 침묵도 머물고, 형상도 더 오래 살아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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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그리지 않은 것이 그린 것을 지탱한다.
보이지 않는 것이 보이는 것을 받쳐 줍니다. 여백의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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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넓은 빈 공간이 형상을 더 또렷하게 한다.
까마귀 한 마리가 여백 위에 있을 때 더 선명해진다. 배경이 주인공을 만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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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11월의 들판이 비어간다.
곡식이 걷히고 풀이 눕는다. 들판이 스스로 여백을 만들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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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덜어 낸 자리에 침묵이 산다.
채움보다 비움이 어렵다. 비워진 자리에서 더 많은 것이 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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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여백은 관객에게 자리를 줍니다.
다 채워진 그림에는 들어갈 곳이 없다. 여백이 보는 이를 초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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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여백이 없으면 형상도 없다.
배경이 있어야 주인공이 있다. 비어 있음이 있어야 채워진 것이 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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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침묵이 설명보다 더 멀리 간다.
말이 닿지 못하는 곳에 침묵이 닿는다. 여백이 하는 일이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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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오래된 그림의 여백에 시간이 쌓여 있다.
그 여백에는 40년의 제주가 담겨 있다. 보이지 않는 시간이 빈 공간을 채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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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남겨 둔 것이 남겨진 것보다 큽니다.
그리지 않기로 한 결정이 그린 것보다 더 큰 결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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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여백은 멈춤이 아니라 다름의 시작이다.
선이 멈추는 자리에서 새로운 것이 시작된다. 여백은 끝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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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하늘도 하나의 여백이다.
구름이 없는 하늘. 그 빈 곳이 가장 넓은 여백이다. 하늘이 모든 것을 담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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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절제가 여백을 만듭니다.
더 그리고 싶은 충동을 참는 것. 그 절제가 여백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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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변시지의 황토빛 배경이 여백이다.
책이 아니라 자연에서 배웠는다. 소나무에서, 파도에서, 까마귀의 침묵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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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비어 있어야 바람도 지난다.
막힌 공간에는 바람이 못 온다. 여백이 있어야 흐름이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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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침묵도 언어이다.
말하지 않음이 말하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전할 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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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여백이 기억 속에 더 오래 남는다.
형상은 잊혀도 그 주변의 넓은 공간이 남는다. 여백의 지속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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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더하지 않는 용기.
더하고 싶을 때 더하지 않는 것. 그것이 예술가에게 가장 어려운 결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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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여백이 있는 삶이 아름답다.
빈 시간, 빈 공간, 빈 마음. 여백이 있어야 삶이 숨을 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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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그리지 않은 것이 가장 솔직한다.
과장하지 않고, 꾸미지 않고. 남겨 둔 것이 솔직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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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여백이 있어야 소나무가 소나무이다.
배경이 없으면 형상도 없다. 여백이 존재를 가능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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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11월의 하늘이 넓다.
단풍이 지고 나면 하늘이 더 보이다. 비워진 것들이 하늘을 드러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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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여백 속에서 형상이 숨 쉽니다.
꽉 찬 공간에서는 숨을 쉴 수 없다. 여백이 형상에게 호흡을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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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멈추는 것도 능력이다.
계속할 줄 아는 것만큼 멈출 줄 아는 것도 중요한다. 여백이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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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여백은 쉬는 자리이다.
보는 눈도 쉬어야 한다. 여백이 눈에게 쉬는 공간을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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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비워진 들판이 내년을 준비한다.
비어 있음이 다음의 준비이다. 여백은 끝이 아니라 시작의 조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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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남겨 두는 것의 아름다움.
다 가지지 않는 것, 다 말하지 않는 것, 다 채우지 않는 것. 여백의 미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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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이 달의 마지막 날, 여백 안에 섭니다.
11월이 끝난다. 비어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여백 안에 한 달이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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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여백이 있는 곳에 다음이 온다.
채워져 있으면 더 올 수 없다. 비어 있어야 새로운 것이 찾아온다.
12월 · 유배와 축복
31일-
1
삶은 때로 유배처럼 느껴진다. 낯선 자리, 오래 견뎌야 하는 계절.
그러나 어떤 사람은 바로 그 유배의 시간 속에서 자기의 선을 찾고 끝내 축복으로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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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축복은 화려하게 오지 않는다. 오래 견딘 끝에 낮고 조용하게 남는다.
그리고 그 남음이 한 사람의 삶을 끝내 빛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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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고독을 지나 얻은 깊이가 있다.
혼자였던 시간이 깊이가 된다. 외로움이 익어 지혜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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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멀리 돌아와서야 비로소 자기 자리에 닿는다.
가장 먼 곳을 돌아온 사람이 자기 자리를 압니다. 귀향은 발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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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상처를 지나도 사라지지 않는 빛이 있다.
태풍도, 폭풍도 이 빛을 끄지 못했다. 그 빛이 예술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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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12월의 제주가 가장 황토빛이다.
나무가 앙상하고 들판이 비어 있을 때, 제주의 진짜 색이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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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유배는 형벌이었지만 동시에 선물이었다.
추사 김정희는 제주에서 세한도를 그렸는다. 유배가 예술을 낳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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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변시지에게 서귀포는 유배이자 고향이었다.
스스로 선택한 유배. 그 고독이 1300점의 예술을 낳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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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겨울이 가장 아름다운 계절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이 있다.
비어 있음의 아름다움. 앙상함의 아름다움. 겨울이 가르치는 미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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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고독이 만든 예술이 가장 오래 남는다.
수많은 이들과 함께 만든 것보다, 혼자 오래 버틴 것이 더 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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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한 해가 끝나간다.
이 해에 있었던 일들이 정리된다. 무엇이 남았는지, 무엇을 남길 것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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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끝에서 새로운 시작이 보이다.
12월 끝에 1월이 기다립니다. 끝이 있어야 시작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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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겨울 바람이 다시 세진다.
1월의 바람으로 돌아간다. 순환이 완성된다. 바람은 처음과 끝을 잇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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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유배지에서 찾은 자기.
올라가는 것만이 예술이 아니다. 내려오는 것, 비우는 것, 그것도 예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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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점 하나에 한 해가 담겨 있다.
365개의 날이 하나의 점으로 모이다. 한 해가 한 점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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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겨울 들판에 홀로 선 사내.
겨울 들판에 한 사내가 섭니다.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도 서 있을 수 있다는 것. 이것이 유배와 축복의 차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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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이 해에 버텨온 것들에 감사한다.
무너지지 않고, 사라지지 않고, 여기 있다. 그것이 작은 축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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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풍토가 한 사람을 만들었다.
제주의 바람, 고독, 바다, 태풍, 까마귀가 변시지를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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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축복은 조용한다.
떠들썩하게 오지 않는다. 오래 견딘 끝에 조용히, 낮게 찾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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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남는 것이 결국 빛난다.
사라진 것들이 많다. 그러나 남은 것들이 있다. 그 남음이 빛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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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이 일력을 함께 넘겼는다.
365일을 함께 왔다. 바람도, 고독도, 선도, 풀도, 조랑말도 함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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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한 해의 마지막 선을 긋는다.
조용히, 떨리지 않게. 이 해의 마지막 붓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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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겨울 제주의 적막이 깊다.
사람이 줄고, 새도 줄고, 들판도 비어 있다. 그 적막이 섬의 본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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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유배를 축복으로 바꾼 사람들이 있다.
추사도, 변시지도, 그리고 자기 삶의 고독을 예술로 만든 모든 이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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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이 해에 그린 것들이 남는다.
기억, 경험, 배움, 사랑. 한 해 동안 캔버스 위에 그어온 선들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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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다음 해에도 바람은 불 것이다.
1월이 오면 바람이 다시 시작된다. 순환이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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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고독이 끝내 깊이가 되었다.
처음에는 외로움이었다가, 시간이 지나 깊이가 된다. 변시지의 40년이 그 증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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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이 달력을 덮으면 다시 1월이 기다립니다.
끝과 시작이 이어진다. 바람의 일력은 끝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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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한 해의 점 하나를 찍는다.
이 해가 하나의 붓질이었다. 그 끝에 점 하나를 찍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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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오래 견딘 끝에 낮고 조용하게 남는다. 그리고 그 남음이 한 사람의 삶을 끝내 빛나게 한다.
이것이 12월의 결론이다. 유배가 끝내 축복이 된다. 오래 견딘 자만이 이 문장을 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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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삶과 죽음은 결국 점 하나를 향해 가는 긴 붓질이다.
365일이 하나의 붓질이었다. 그 끝에 점 하나. 그리고 다시 시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