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시지 아틀라스 WORKS · FŪDO · LANGUAGES
EN
연구 · 비평

일본 유학기, 1940–1957

The Japan Years
The Japan Years

1. 열다섯의 입학

1941년, 변시지는 오사카미술학교 서양화과에 들어갔다. 열여섯이었다.
1945년에 졸업했다. 졸업하던 해에 전쟁이 끝났고, 나라가 갈렸다.

이 학교의 교과는 도쿄미술학교가 세운 근대 일본 미술교육의 체계를 따랐다.
해부학, 누드 데생, 실외 사생. 서구 아카데미의 훈련이 그대로 옮겨져 있었다.
변시지는 그 안에서 소묘와 유화의 기초를 익혔다.

기초는 나중에 버려진다. 그러나 버릴 것이 있어야 버릴 수 있다.

졸업 후 그는 도쿄로 올라가 아테네 프랑세에서 프랑스어를 배웠다.
서양 미술을 원어로 읽고자 한 시도였다.


2. 스승, 데라우치 만지로

도쿄에서 그는 데라우치 만지로(寺內萬治郞, 1890–1964)의 문하에 들어갔다.

데라우치는 도쿄미술학교 서양화과 출신으로, 일본 아카데믹 서양화의 중심에 있던 화가다.
차분한 색조와 견고한 데생이 그의 특징이었다. 인체 표현에 오래 몰두했다.
전후 일본 화단의 원로로서 일전(日展)의 심사와 운영에 관여했고, 많은 제자를 길렀다.

변시지가 이 문하에서 얻은 것은 두 가지다.

하나는 손이다. 인체를 정확히 세우는 데생, 유화 물감의 층을 다루는 법.
하나는 눈이다. 무엇을 덜어내면 화면이 조용해지는가에 대한 감각.

이 두 가지는 삼십 년 뒤 제주에서 전혀 다른 모습으로 다시 나타난다.


3. 화단으로 나가다

연도무대결과
1947제33회 광풍회전입선
1948제34회 광풍회전최고상 · 최연소 수상
1949도쿄 시세이도 갤러리첫 개인전
1951도쿄제2회 개인전
1953오사카 한큐백화점 양화화랑제3회 개인전

1948년의 최고상은 스물셋에 받은 것이다.
출품작에는 〈베레모를 쓴 여인〉과 〈만돌린을 가진 여자〉가 포함되어 있었다.

이 무렵의 그림은 인물이 중심이었다.
부드러운 빛, 절제된 음영, 정확한 살결.
일본 화단이 오래 다듬어 온 온건한 양화(洋畫)의 문법이 화면 위에 그대로 있다.

그는 그 문법을 완전히 익혔다.
익혔기 때문에, 나중에 떠날 수 있었다.

자료 주의 — 이 시기 변시지에 대한 일본 평단의 구체적 논평을 전하는 자료가

온라인에 여럿 유통되고 있으나, 지면·필자·연도가 명시된 1차 자료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본 아카이브는 확인되지 않은 인용을 싣지 않는다. 도록과 당대 미술지 조사를 진행 중이다.


4. 그가 서 있던 자리

1940–50년대 일본의 서양화단은 두 갈래로 흘렀다.

한쪽에는 광풍회·일전으로 이어지는 아카데믹한 흐름이 있었다.
다른 쪽에서는 전후의 새로운 실험들이 태어나고 있었다. 1950년대 후반, 구타이(具體)를 비롯한
전위적 움직임이 국제적으로 주목받기 시작한다.

같은 시기 서구 미술계의 눈은 일본의 판화와 전위 쪽으로 기울어 있었다.
사이토 키요시(齋藤淸)가 1951년 제1회 상파울루 비엔날레 판화 부문에서 최고상을 받은 일은 그 신호였다.

변시지는 이 두 흐름 어느 쪽에도 온전히 속하지 않았다.
그는 아카데믹한 훈련을 끝까지 받았고, 그 훈련 위에서 상을 받았다.
그러나 그가 결국 도달한 자리는 아카데미도, 전위도 아니었다.

제주였다.

그 자리는 아직 이름이 없었다.
이름을 붙이는 데 다시 삼십 년이 걸린다.


5. 이 시기를 어떻게 읽을 것인가

일본 유학기를 "습작기"로만 읽으면 놓치는 것이 있다.

그는 이 시기에 서양화라는 언어를 모국어처럼 익혔다.
그렇기 때문에 훗날 제주에서 그 언어를 해체할 때, 그것은 미숙함이 아니라 선택이었다.

덜어내는 일은 가지지 못한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참고

  • - 국립민속·미술 아카이브 및 광풍회 도록 (조사 중)
  • - 데라우치 만지로 관련: 도쿄문화재연구소 아카이브
  • - 사이토 키요시: Smithsonian National Museum of Asian Art

본문의 사실 기술과 해석은 구분되어 있다. 해석은 필자의 것이다.

English version →← 연구 목록으로